교통사고를 당하여 다리 하나를 절단한 후 오랫동안 병원과 재활원 신세를 졌다. 퇴원 후에는 매주 여러 번 재활원에 통원하며 장애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본격적인 생활 적응 훈련과 체력 강화 훈련을 받았는데, 휠체어 굴리기로 시작된 훈련이 절단된 다리에 의족을 끼고 쌍지팡이를 짚고 걷는 연습으로 마무리되었다. 적응 훈련에는 평지 걷기, 계단 오르내리기, 다른 사람 어깨 짚고 걷기, 실물 모형이 비치된 장소에서 은행 이용하기, 시장 보기, 그리고 부엌에서 일하는 연습 등 실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반복 연습이 포함되었다.
재활 훈련을 모두 끝내고 집에서 독서로 소일하던 어느 날 ‘다리 절단 장애인 골프회’라는 곳에서 초대장을 받았다. 다리를 절단한 사람에게 골프 지도를 해 주고 회원들끼리 골프도 함께 즐기는 모임이라고 하는데 장비가 없으면 무료로 주고, 간단한 식사와 음료수도 제공한다고 했다. 모임 장소가 집에서 그리 멀지도 않았고, 달리 할 일도 없었으므로 모임에 참석해 보았다.
다리를 절단한 장애인들이라지만 그날 모임에 나온 사람들은 다들 체격이 건장하고 활기가 있어 보였다. 휠체어에 앉은 사람, 지팡이 하나를 짚은 사람, 정상인과 다름없이 허리를 유연하게 돌리는 사람, 모두 자신의 신체 조건에 맞게 씩씩하게 골프를 즐기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고, 피나는 연습을 거쳐 그런 경지에 도달했을 그들이 존경스러웠다. 나도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여 한 팔로만 골프채를 휘둘러 보니 비거리는 대단치 않았으나 방향은 정확해서 예전의 실력이 대강 드러나는 듯했다.
무릎 아랫부분에서 다리를 절단한 사람이 의족을 끼고 훈련을 받으면 다리가 절단 전 기능의 80~90% 정도를 회복한다지만, 나처럼 무릎 위를 절단한 사람은 아무래도 기능회복에 한계가 있으니 정식 경기에서는 두 그룹을 구분하여 진행한다고 했다. 활기찬 모임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기는 했지만 더는 참석하지 않았다. 예전과 비슷한 정도로 골프를 즐기려면 아무래도 누군가의 도움이 계속 필요하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기 어려워서 민폐나 끼치기에 십상이어서 골프를 계속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사고 이전에도 골프를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골프란 약간의 장비만 준비하면 누구나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비용이 그다지 들지 않는 스포츠다. 사설 골프장이 아니라면 입장료도 몇 푼 되지 않고 특별한 복장도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시간이 좀 많이 걸리는 게 문제다. 시간 대비 운동량만 따지만 동네에서 테니스를 하거나 자전거 타기 아니면 달리기를 하는 게 훨씬 낫다.
나처럼 운동 신경이 둔한 사람은 아무리 정신을 집중해서 휘둘러도 늘 점수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골프 게임을 마치고 나면 언제나 불만스러워서 스트레스가 풀리기는커녕 쌓이기만 해서 내가 왜 그 짓을 해야 하는지 회의를 느끼곤 했다. 공을 발로 툭툭 건드려서 위치를 변경하는 발 골프 또는 스코어 카드에 점수를 적을 때 한 두 점 정도 몰래 줄이는 연필 골프를 하는 비신사적인 사람과 어쩌다 한 조가 되면 경기 내내 기분이 나빴다.
골프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어도 남부 지방에서 직장 생활할 때는 시간만 나면 열심히 골프장으로 나섰다. 카트를 이용하지 않고 가방을 메고 걸어서 하루에 두 바퀴씩도 예사로 돌았다. 오지라고 불릴만한 곳이라 달리 즐길 거리가 마땅치 않았고, 직장 동료와 어울리려면 골프를 함께 하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부근에 골프장이 많았는데, 입장료는 거의 공짜 수준이었고, 퇴근이 네 시라서 골프장에 나갈 시간을 쉽게 낼 수 있어서 퇴근하자마자 직장에서 5분 거리인 골프장으로 가면 어두워지기 전에 너끈히 한 바퀴 돌 수 있었다. 공이 마음 먹은 대로 날아가지 않아 짜증을 내면서도 골프장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는 게 좋았고, 게임이 끝나면 동료들과 시원한 맥주 한 잔 하는 재미가 있어서 골프를 끊지 못 했다.
퇴사하고 뉴저지로 되돌아 온 후에는 골프를 쳐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사고 당한 이후는 말 할 것도 없다. 그렇게 골프를 철저히 끊을 수 있었던 걸 보면 내가 골프라는 운동을 별로 즐기지 않았던 게 사실인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도 경기 후 맥주 한 잔 나누던 젊은 시절의 동료가 생각나고 골프장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이 그립다. 늦가을 페어웨이에 낙엽이 여기저기 깔리고 주변의 단풍이 운치 있었던 캐나다 몬트리올 근교의 골프장, 큰 호숫가 주위에 길게 뻗은 갈대밭을 걸으며 골프 하러 온 걸 깜빡 잊었을 정도로 경관이 빼어났던 시카고 근교의 골프장, 산꼭대기에서 낮은 절벽 밑으로 연결되는 절묘한 코스가 인상적이던 스모키 마운틴 중턱에 있던 골프장이 지금도 눈에 삼삼하다.
두어 달 전에, 가까이 지내는 B 씨에게 오랫동안 창고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던 골프 가방과 골프 클럽 두 세트를 주면서도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앞으로 골프를 다시 즐길 일은 영영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프로 골퍼를 꿈꾸다가 포기하고 뒤늦게 직장 생활을 하는 둘째 사위와 골프장에 함께 나갈 수 없는 건 못내 아쉽다. 사고 전, 그가 사위 후보였을 적에 그런 기회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랬더라면 나는 타이거 우즈에 버금가는 골퍼와 함께 경기를 했었노라고 허풍을 떨 수 있을텐데.
(2014년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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