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다리에 의족을 낀 나는 평상시에는 양팔에 크러치(목발)를 짚고 걷지만, 때로는 급한 마음에 몇 발자국 정도는 크러치 없이 걸을 때가 있다. 크러치 없이 펭귄 걸음으로 허둥대며 걷는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놀라서 한마디씩 한다. “아니, 크러치 없이 잘 걷네요.” 별것도 아닌 일에 놀라는 사람이 우스워서 나는 그때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한다. “평지에서는 크러치 없이도 걸을 수 있어요. 안전하게 빨리 걸으려고 크러치를 쓰는 겁니다.” 예전에 체육관에서 트레이너와 함께 크러치 없이 중간에 쉬지도 않고 100m 트랙을 여덟 바퀴나 걸은 적이 있다고 말해도 믿지 않는 눈치다.
10여 년 전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는 절단되고 오른쪽 다리의 뼈는 여덟 군데나 골절되었다가 여러 달이 지나서 그럭저럭 아문 상태로 병원에서 퇴원했다. 휠체어를 굴리며 지냈지만, 평생 침대에서 지내지 않게 된 것만 해도 다행이라 여기며 지내다가 재활원에서 권하는 대로 의족을 주문하며 휠체어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의족을 찾으러 간 날, 의족 전문가는 나지막한 평행봉을 짚고 걷는 연습을 몇 번 시키더니 재활원에서 정식으로 의족을 끼고 걷는 연습을 마칠 때까지 절대로 집에서 혼자 걷는 연습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도 의욕이 지나쳐서 그날 저녁에 아파트 복도에서 워커(보행보조기)를 짚고 혼자서 걷는 연습을 하다가 넘어져서 가까스로 아문 오른쪽 다리가 또 부러져서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 가는 소동을 빚었다. 몇 달 동안 부러진 다리로 다시 휠체어 신세를 지며, 내 팔자에 걷기는 다 글렀다고 체념했다.
부러진 다리가 아물어 가자 큰딸과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다시 워커를 짚고 재활원에서 걷는 연습을 시작했다. 겁이 나서 엉덩이를 뒤로 쑥 빼고, 고령의 노인처럼 느릿느릿 걸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크러치를 짚고 걷기는 물론 계단 오르내리기, 앉고 서기, 자동차 타고 내리기, 부엌 캐비넷에 식기를 넣고 꺼내기 등 일상생활에 적응하는 훈련을 받았다. 재활원 훈련을 마쳤지만, 여전히 걷는 게 무서워서 엉덩이를 뒤로 쑥 빼고 머뭇거리며 걷는 게 몸에 배었다. 그래도 “이렇게 두 다리를 걷는 것만 해도 어딘가? 더는 욕심부리지 말자. 넘어져서 다리가 또 부러지면 그때는 끝장이야.”라고 생각하며 그런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따라간 체육관에서 앨리슨(Allison)이라는 트레이너를 만났다. 그녀는 얼마나 극성 맞은지 이름도 생소한 갖가지 운동 기구인지 고문 도구인지에 나를 올려놓고는 달달 볶았다. 뛰기, 계단 오르내리기 등을 강제로 한 번에 30분 정도씩, 그것도 빠른 속도로 하게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지쳐서 엉덩이를 뒤로 쑥 빼고 포기하려고 하면 예쁜 내 엉덩이를 손으로 밀기까지 하면서 포기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속으로 그녀에게 온갖 저주를 퍼붓고, 얼굴을 찌푸리며 소심하게 거부했지만, 그녀는 끄떡도 하지 않고 나를 몰아붙였다.
어느 날 그녀가 느닷없이 말했다. “크러치 한 개는 나에게 주고, 한 개만 짚고 걸어.” 내가 말했다. “안돼.” 그러고 서로 옥신각신했다. “왜 안 되는데?” “위험하잖아.” “그건 합당한 이유가 될 수 없어. 얼른 크러치 한 개 내놔.” 그렇게 크러치 한 개를 그 마녀에게 빼앗기고 어쩔 수 없이 크러치 한 개로 걸었는데 잔뜩 겁을 먹고 비틀거리며 첫날에는 10m가량 걸었다. 몇 주가 지나며 크러치 한 개를 짚고 걷는 거리가 점점 늘어갔다.
두어 달 후에 비슷한 일이 또 벌어졌다. “크러치 둘 다 내놔. 그리고 그냥 걸어봐” 난 이제 죽었구나 싶어서 거칠게 반발했다. “그렇게 못해.” “왜?” “무섭단 말이야.” “잔소리 말고 해 봐. 넌 크러치 없이도 걸을 수 있어. 내가 알아.” 그렇게 해서 크러치 없이 첫날에는 30~40m 정도 걸었다. 주위에서 운동하던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성원을 보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녀는 100m 길이의 실내 트랙에서 나를 걷게 했다. 머뭇거리는 내 옆에 나란히 서서 넘어질 듯하면 자기가 잡아줄 테니 염려 말고 걸으라고 재촉했다. 그렇게 해서 그날 트랙을 여덟 바퀴 돌았으니 쉬지 않고 800m를 크러치 없이 걸은 셈이다. 하지만 크러치 없이 걷는 건 평탄한 실내에서 보호자가 지켜볼 때나 그럴 일이지 조금이라도 경사진 곳에서는 매우 위험하고 속도도 매우 떨어진다. 그래서 가까운 거리라도 안전과 속도를 고려해서 반드시 크러치를 짚고 걸어야 한다.
다리 절단 장애인이 운동까지 하는 게 가끔 언론에 보도되기도 하지만, 그건 매우 드문 경우다. 다리를 절단했을 때의 나이, 절단 부위, 운동 감각, 훈련 정도, 의족의 성능 그리고 본인의 의지에 따라 도달할 수 있는 단계가 다르다. $1만짜리 의족을 착용하느냐, 첨단 기능이 부가된 $10만 이상 가는 의족을 착용하느냐에 따라 걷거나 뛰는 정도도 엄청나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앨리슨은 내가 도달한 단계도 성공적인 사례라고 생각했는지 영문으로 쓴 내 체험담을 잡지에 소개하고 내가 크러치 없이 걷는 사진을 찍어서 포스터로 제작해서 체육관 입구에 크게 붙여 놓았다. 정상적인 사람들이 보면 그저 걷는 것, 그것도 크러치를 양팔에 짚고 걷는 것에 불과하지만, 나 같은 장애인에게는 그런 단계에 오르기까지 수없이 공포심이나 자신과 싸움을 이겨내야 하고, 가족의 도움과 잔소리도 필요하고, 경제적인 뒷받침 또한 중요함을 이해하면 좋겠다. “No pain, no gain.”이라는 말처럼 고통 없이 저절로 걷게 되지 않더라.
(2018년 4월 9일)
'교통사고 이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날고 싶다 (1) | 2024.10.02 |
---|---|
구급차 안에서 (2) | 2024.10.02 |
고요한 밤, 거룩한 밤 (0) | 2024.10.02 |
Mr. One Foot (3) | 2024.10.02 |
혼수상태에 빠져 보니 (2) | 2024.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