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블로그에 올린 ‘환상통’이란 글에 누군가가 댓글을 올렸다. 페이스북과는 달리 블로그에 댓글 올라오기란 가뭄에 단비 같아서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 보았더니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가 엉덩이 바로 밑에서 잘린 이후에 몇 달마다 겪는 환상통의 고통을 쓴 댓글이었다. 그는 그 고통이 그는 요로결석으로 겪는 고통보다 더 심하다고 썼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읽으며 마음 아파하다가 그의 아이디에 눈길이 갔다. ‘One Foot’이었다. 다리 하나를 잃은 걸 이런 식으로 드러내다니, 이게 허무 개그인지, 자학 개그인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아이디를 쓰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발 하나가 없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독각(獨脚)이라는 호를 쓴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유식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한글 ‘독각’을 보고는 독각(獨覺)일 거라고 좋게 해석해 줄 테고 스스로 유식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독각대왕(獨脚大王)이라는 이름의 귀신을 연상하며 혀를 찰 것이다.
나는 다리 하나가 없는걸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도 않지만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부족(不足)하다’는 말에 늘 불만이 있었다. 충분하지 못하거나 만족스럽지 못 한다는 표현에 왜 발이란 단어가 들어가느냐 말이다. 왜 하필이면 ‘발이 없는 걸’ 충분하지 못 하다는 표현으로 써야 하는가 말이다. 발이 없는 게 충분하지도 못 하고 만족스럽지 않은 게 사실일지라도.
Mr. One Foot 때문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참에 족(足)에 대하여 제대로 공부해 보기로 마음먹고 참고 자료를 적지 않게 뒤적였다.
足이라는 한자는 크게 두 가지 경우에 사용된다.
첫째로 신체 일부의 명칭과 그 부위의 기능에 관하여 사용될 경우.
발, 다리, 걷다, 밟다…등의 의미로 쓴다.
둘째로 발과는 상관없이 사용될 경우.
충분하다, 만족스럽다…등의 의미로 쓴다.
첫째와 둘째는 전혀 상관관계는 없지만, 두 가지 모두 고대 중국어의 발음이 같으므로 둘째 경우에 해당하는 의미를 형상화한 한자를 따로 만들지 않고 같은 zu라는 발음을 가진 足을 차용했다는 학설이 가장 그럴듯했다.
잘 알지도 못하고 부족(不足)이란 말이 발 없는 사람을 모욕한다며 흥분한 내가 부끄러웠다. 그러니까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도 진리이다.
발을 형상화한 足이라는 한자는 하이힐을 신은 여인의 튼튼한 발을 연상시킨다. 때로는 스포츠용품점에서 파는 낚시용 장화를 연상시킨다.
足의 고어체는 내가 신는 의족을 연상시킨다. 의족에서 발 부위는 기본적으로 탄성이 있는 철판인데 거기에 부드러운 합성수지 재질을 덮어씌워서 신발에 꼭 맞도록 발가락까지 만들어서 진짜 발과 비슷하게 만든다.
며칠 동안 발만 연구했으니 나도 어지간히 할 일이 없기는 하다. 그래도 이렇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헛일한 것은 아니려니 자위해 본다. 그렇게 자위한다 하더라도 발 하나 없는 건 무척 불편하다. 두 다리 다 있는 사람들에게 그 불편함을 아무리 설명한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Mr. One Foot과 나는 만난 적도, 직접 대화한 적은 없어도 그 점에서는 완전히 생각이 같을 것이다.
(2017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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