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고인을 보내는 마지막 길에서

삼척감자 2025. 10. 9. 06:16

미국에서 가톨릭식 장례 절차는 뷰잉(Viewing), 장례미사 그리고 하관예식의 세 단계로 진행된다. 뷰잉(공식 명칭은 Vigil for the Deceased)은 장례 미사 전날 고인의 가족 친지 그리고 신자들이 고인의 시신 앞에서 함께 기도하는 예식이다. 장례미사는 미사 전례를 통해 고인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예식이며, 하관(또는 안치) 예식은 장례 미사 후 무덤 또는 안치소에서 사제가 묘소 축복 및 고인의 영혼을 하느님께 맡기는 예식이다. 나는 평소 아는 분이 세상을 떠나시면 대개 뷰잉이나 장례미사에만 참석하지만, 가까이 지냈던 분일 경우에는 장례미사 후 장지로 이동하여 하관 예식까지 참례한다. 

 

장지로 이동할 때는 앞서가는 장의사 차량의 묵직한 뒷모습을 따라 느린 행진이 시작된다. 이 시간은 마치 세상의 속도와는 단절된 듯이 고요하다. 장례 행렬의 차량들은 모두 비상등을 깜빡인다. 그 불빛은 단순한 경고 신호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슬픔을 기억해야 할 때임을 알리는 빛이다.

 

차마다 앞 유리창에 붙은 Funeral이라는 작은 종이는, 우리가 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이유를 분명히 알려준다. 다른 차량에 우선하여, 때로는 교통 신호도 무시하는 건 결코 무례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고인의 마지막 여정을 위한 특별한 통행권이다.

 

빨간불이 켜진 교차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며, 나는 숨을 죽인다. 평소라면 분주하게 흐르던 차량 통행이 우리 앞에서 가짓말처럼 멈춘다. 반대편 차선이나 옆에서 달리던 차량들이 속도를 늦추거나 멈춰 서서 조용히 우리를 지나가게 한다. 어떤 운전자는 고인을 환송하며 짧게 경적을 울리기도 한다. 평소 같으면 바쁘게 달릴 도로인데, 오늘은 고요하다. 그들의 무언의 존중과 배려가 내 마음을 울린다. 마치 모두가 고인의 마지막 길을 조용히 배웅하는 듯하다. 짧은 순간,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고인의 존재만이 뚜렷해진다.

 

차 안은 대부분 침묵 속에 잠겨있다. 간간이 고인과 얽힌 추억을 나누지만, 그마저도 조용히 멈춘다. 나는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삶의 풍경을 본다. 길가에 잠시 멈춰 서서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 그 순간 삶과 죽음이 한 줄의 행렬로 이어진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침묵 속에서 나는 고인과의 기억을 되짚는다.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 함께했던 소중한 순간들,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모습…. 비상등이 깜빡이듯, 그 기억들도 내 마음속에서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이제 곧 도착할 장지는 모든 기억을 묻고, 현실로 돌아가야 할 경계선이다.

 

그러나 이 길 위에서는, 나는 장례 행렬의 일부로서 고인과 가장 가까이 있다. 다른 운전자들의 멈춤과 기다림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외롭지 않게 함께해 주는 것 같다. 그 모습을 보며, 슬픔이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누군가의 마지막 길을 함께 배웅하는 것이 살아 있는 자들의 가장 중요한 의식임을 느낀다.

 

행렬은 느린 속도로 이어지며, 가끔 끊어지기도 하지만 선도 차량의 안내로 다시 연결된다. 흐트러짐 없이, 우리는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공동묘지 앞에서 잠시 멈춘 이 느린 행렬 속에서 나는 삶의 속도를 다시 배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누군가의 뒤를 따르거나, 누군가의 앞을 걸으며 이 길을 지나갈 것이다. 오늘은 고인과 함께 걷지만, 언젠가는 누군가가 나의 뒤를 따라올 것이다.

 

이 행렬은 내게 고인에게 바치는 가장 중요한 인사로 남을 것이다. 행렬이 멈추면 작별의 시간이 시작된다. 나는 마음속으로친구의 이별이라는 노래를 조용히 부른다.

서편의 달이 호숫가에 질 때에 / 저 건너 산에 동이 트누나 / 사랑 빛에 잠기는 빛난 눈동자에는 / 근심 띠운 빛으로 편히 가시오 / 친구 내 친구 어이 이별할까나 / 친구 내 친구 잊지 마시오.”

 

(2025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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