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모세와 제갈공명

삼척감자 2025. 12. 19. 23:04

모세와 제갈공명은 약 천오백 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살았다.
모세는 기원전 13세기, 이집트와 시나이 광야를 오가며 노예상태로 지내던 백성을 이끌었고, 제갈공명은 서기 3세기, 삼국으로 갈라진 중국 대륙에서 촉한의 운명을 짊어졌다.

 

서로 다른 땅과 언어, 전혀 다른 시대에 서 있었지만, 두 사람의 생의 끝자락은 묘하게 닮아 있다. 모세는 요르단강 동편 느보 산에 올라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다 생을 마쳤다. 신명기 34장에 따르면 그는 그 땅에 들어가지는 못한 채, 멀리 바라본 뒤 그곳에서 죽었다고 전해진다.

 

제갈공명(諸葛亮)은 삼국시대 촉한의 승상으로, 위나라를 상대로 한 북벌 도중 오장원(五丈原), 오늘날 중국 섬서성 일대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234).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사명을 거의 다 이룬 시점에서, 목표를 눈앞에 두고 생을 마감했다는 점에서 비교된다.

 

느보 산에 선 모세의 마음에는 완성의 기쁨과 내려놓음의 슬픔이 함께 있었을 것이다. 약속의 땅은 눈앞에 있었지만, 그는 그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성경은 그를 실패자로 그리지 않는다. 그는 맡은 사명을 끝까지 감당한 사람이었다. 후계자 여호수아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 공동체는 더 이상 길을 잃지 않을 토대를 건네받은 상태였다.

 

오장원에서 병상에 누운 제갈공명은 끝내 이루지 못한 과업의 무게를 안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북벌은 완성되지 않았고, 한실 부흥이라는 이상은 여전히 요원했다. 그럼에도 그의 삶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제갈공명의 마지막은 평온한 안식이라기보다, 끝까지 불타다 스러지는 불꽃에 가까웠을 것이다.

 

두 사람의 미완은 성격이 달랐다.
모세의 멈춤에는 받아들임의 평온이 있었다. 하느님께서 직접 지명하신 여호수아가 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었고, 가나안 입성의 주역이 될 것이 분명했기에, 마지막 한 걸음이 더 이상 자신의 몫이 아님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의 미완은 다음 세대를 위한 비워 둠이었다.

 

제갈공명은 달랐다. 그에게는 멈출 자리가 없었다. 한 번 더 계산하면, 한 번 더 밀어붙이면 역사가 달라질 수 있다고 믿었고, 결국 뜻보다 먼저 몸이 무너졌다. 그의 미완은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짐이었다. 강유, 비의, 동윤 같은 계승자들이 있었지만, 제갈공명 한 사람이 짊어지고 있던 무게가 너무 컸기에 촉한의 몰락은 이미 예고된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모세를 떠올리면 경외가 남고, 제갈공명을 떠올리면 슬픔이 남는다.
모세는 결말을 소유하지 않는 위대함을 보여 주었고, 제갈공명은 모든 것을 책임지려 할 때 인간이 어떻게 스러지는지를 보여 준다.

 

이 두 사람의 일생, 특히 생의 마지막을 떠올리다 보면 두 문장이 겹쳐 떠오른다.

사람의 마음이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주님이시다.” (잠언 16,9)

그리고 또 하나,

謀事在人, 成事在天”(일을 도모함은 사람에게 있고, 성취는 하늘에 있다)

이 문장의 정확한 출전은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제갈공명의 글과 행적, 특히 『출사표』와 말년의 태도는 이 사상을 분명히 보여 준다. 사람은 끝까지 애써야 하고, 그러나 끝내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진실을 살아냈다.

 

(2025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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