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사귀는 사람을 부를 때 우리는 흔히 ‘친구’라는 말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한국어에는 그보다 앞서 사람을 부르던 이름들이 있었다. 벗과 동무다. 이 세 단어는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 방향에서 관계를 바라본다.
벗은 마음에서 시작된 말이다. 나이도 사회적 위치도 묻지 않는다. 말없이 함께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이가 벗이다. 벗이라는 말에는 늘 조용한 기척이 있고, 어딘가 문학적인 결이 남아 있다. 민요나 잡가에 흔히 등장하는 ‘벗님’이라는 호칭은 그래서 더욱 정겹다.
“어서 오소 벗님네야, 꽃 피는 길로 가세
흙 묻은 짚신이라도 봄길에는 가볍구나”
동무 또한 본래는 나이와 신분을 가르지 않던 순수한 우리말이었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노래 가사 속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던 단어였다.
“나가자 동무들아 어깨를 걸고…”
“동무들아 오너라 서로 손잡고…”
“어깨동무 씨동무 미나리밭에 앉아라…”
이런 노랫말들이 그 예다.
그러나 동무는 북한에서 평등과 혁명을 상징하는 공식 언어가 되었고, 남한에서는 전쟁 이후 이념의 색깔로 덧칠된 채 일상에서 멀어졌다. 우리는 이제 ‘친구’라는 말을 가장 자연스럽게 사용하지만, 그 선택마저도 시대가 인간관계에 붙여 준 이름이라 할 수 있다.
‘親’이라는 글자는 나무 위에 올라 멀리 바라보는 모양에서 나왔다고 한다. 기다림이 간절해, 멀리서 다가오는 이를 조금이라도 빨리 보려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런 대상이 친구다. 친구라는 말에는 단순한 친밀함을 넘어, 오래 바라보고 지켜본 끝에 생긴 신뢰가 스며 있다. 그래서인지 친구라는 단어에는 ‘옛 구(舊)’ 자가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친구는 시간을 통과한 관계다. ‘가깝고 오래된 사람’이라는 뜻 그대로, 친구라는 말 속에는 세월이 들어 있다. 우리는 이 말을 쉽게 쓰지 않는다. 나이가 다르거나 관계의 결이 다를 때, 아무리 마음이 가까워도 그 말 앞에서는 한 번쯤 멈추게 된다. 친구라는 이름에는 동등함과 지속이 함께 요구된다.
분단과 근대화를 거치며 벗은 문학의 언어로, 동무는 이념의 언어로 물러났고, 가장 무난한 이름이었던 친구만이 일상에 남았다. 우리가 오늘 쉽게 부르는 관계의 이름 속에는, 관계를 쉽게 맺고 쉽게 놓아야 했던 시대의 선택이 스며 있다.
영어에서는 이 관계를 조금 다르게 부른다. 영어의 friend는 사귄 시간도, 마음의 거리도, 나이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어제 만난 사람도 friend가 될 수 있고, 오래 연락하지 않은 사람도 여전히 friend로 남는다. 그만큼 그 말이 가리키는 범위는 넓다.
이 차이에서 종종 오해가 생긴다. 한국인이 영어로 “He is my friend”라고 말할 때, 그 말 속에는 오랜 시간과 신뢰가 담겨 있지만, 이를 듣는 외국인은 그저 편안한 관계 정도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반대로 “우린 친구예요”라는 말을 들은 한국인은, 그 말이 뜻하는 관계의 무게를 먼저 헤아린다. 그래서 어떤 관계는 영어로는 friend였지만, 한국어로는 끝내 친구가 되지 못하기도 한다.
(2025년 1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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