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약국에서 고혈압 약을 받아 들고 나오며 잠시 걸음을 멈췄다.
처방전과 함께 건네받은 영수증을 다시 들여다보니, 90일치 약값이 3달러였다. 한 달로 따지면 1달러. 숫자가 잘못 적힌 것은 아닐까 싶어 눈을 몇 번이나 비볐다. 이건 거의 거저나 다름없었다.
미국의 의료비는 흔히 비싸다고들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속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구조는 생각보다 단순하고 분명하다. 소득이 높은 사람은 그만큼 더 부담하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최소한의 비용만 내도록 되어 있다. 65세가 넘고 일정 기간 세금을 납부해 온 이들은 메디케어를 통해 진료를 받는다. 대부분의 노년층이 여기에 속하고, 그래서 병원비 앞에서 지나치게 주눅 들 필요는 없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회사가 보험료를 대신 내주지만, 자영업자는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그 차이가 때로는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원칙은 있다. 응급 상황 앞에서는 계산부터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병원은 환자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살리는 일이 먼저다.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환자로 병원에 실려 갔던 내 경우도 그랬다. 여섯 달을 병원에서 보내고 퇴원할 즈음, 누군가가 흘리듯 말해 준 진료비 액수는 300만 달러에 가까웠다. 자동차 보험에서 25만 달러를 부담했고, 나머지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른다. 다만 분명한 건, 병원에서 내게 진료비를 청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 나라의 의료 시스템은 완벽하지는 않다. 불편한 점도, 아쉬운 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이 걸린 순간만큼은 인간적인 선택을 한다. 그 덕분에 나는 살아서 다시 일상을 걷고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의 의료 제도를 잘 알지도 못한 채, 유튜브 화면 속 단편적인 이야기만으로 비인간적이라고 단정 짓는 목소리를 들을 때면 마음 한편이 씁쓸해진다. 이곳에서 받은 의료의 손길 덕분에 다시 숨을 쉬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말들이 쉽게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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