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들이 어릴 적, 영어도 서툴고 미국 사정에도 어두웠던 나는 아이들의 눈에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까. 글솜씨 좋은 딸이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글을 읽다 보면, 그 시절 나의 초상이 고스란히 되살아나곤 한다.
딸의 글에는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다.
하나는 40년 전, 동양인을 보기 드물었던 시절의 일이다.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우리 뒤에 앉아 있던 고등학생들이 나지막하게 ‘칭총칭총’거리며 동양인 억양을 흉내내며 킥킥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저 묵묵히 식사에만 전념했다. 식당에는 우리 말고는 전부 백인뿐이었고, 마땅히 대처할 방법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여덟 살이던 딸은 그 광경에 분노로 속을 끓였고, 훗날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데에는 그날의 기억이 큰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자동차를 사러 갔던 날의 에피소드다. 미국인 딜러의 기세에 눌려 꼼꼼히 따지지 못하는 아빠의 모습이 못내 안타까웠다는 내용이다. 사소한 거래조차 계약 조건을 면밀히 살피지 못해 손해를 보는 것 같은 아빠가 참 답답했다는 대목도 있다. 내가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밀고 당기는 일에 워낙 소질이 없어서 그런 거래에 서툴고, 사랑놀이에도 서툰 사람이라는 걸 딸은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나 보다.
3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갑자기 주재원으로 부임했으니, 언어도 문화도 낯설었던 아비의 모습이 딸들 눈에는 참 어리숙해 보였을 법도 하다. 이제 40대 중반이 된 딸들이 회상하는 나의 모습이 그토록 한심했나 싶어 헛웃음이 나온다.
이런 고백이 독자들의 공감을 샀는지, 최근 올린 글은 ‘좋아요’가 2,500개를 넘고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 자신들도 그보다 던한 일을 겪었다며 인종 차별에 분개하는 독자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당신의 아버지는 당신을 무척 자랑스러워하실 겁니다”라는 따뜻한 격려도 있었다. 딸은 대개 아빠를 조금 부족한 사람으로 묘사하곤 하는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런 인간적인 면모에 더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세월이 흘러 동양인의 위상도 예전과 달라졌고, 미국 주류 사회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나 역시 그간의 세월만큼 단단해져서, 딸의 글에 등장하는 그런 일들은 이제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가끔 딸의 글을 읽다 보면 아비가 지나치게 과소평가된 것 같아 살짝 서운할 때도 있다. 속으로는 “이 녀석아, 아빠가 실제로는 얼마나 유능한 사람인데!” 하고 한마디 하고 싶지만, 이내 마음을 접는다. 그런 글 덕분에 잠재 고객들이 열렬히 반응해 주고, 실제 계약으로까지 이어진다니 그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글 속에서 내가 조금 망가져 보이면 어떠랴. 아비의 ‘망가짐’이 딸의 사업에 밑거름이 된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딸의 글에 어떤 변명이나 반론도 하지 않는다. 그저 대견한 마음을 담아 “글 잘 썼구나”라는 짧은 칭찬 한마디를 건넬 뿐이다.
“사람은 겉모습을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보신다(1사무 16:7)”라는 성경 구절이 떠오른다. 결국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이다. 어리숙해 보였던 아비의 인내와 서툰 경험들이 밑거름이 되어, 우리 딸들이 이만큼 당당하고 단단하게 성장한 것이라 믿고 싶다.
(2026년 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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