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은 칼바람이 부는 강추위가 기승이지만, 내가 찾는 체육관의 풍경은 계절을 잊은 듯하다. 오늘 체육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시선을 붙드는 건 여든은 족히 넘었을 법한 노인의 가벼운 차림새였다. 반소매 티셔츠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깡마른 몸으로 당당히 러닝머신 위를 걷는 그의 모습은 겨울이라는 계절이 무색하다. 그리고 스포츠 브라와 몸에 밀착된 짧은 하의만 걸친 젊은 여성 둘이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이 내내 내 시선을 붙잡았다. 시원하게 드러난 그들의 하얀 등이 그만큼 아름다웠으나, 두툼한 옷을 껴입고 몸을 웅크린 채 들어간 내 눈에는 사뭇 추워 보이기까지 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저들은 우리보다 추위를 덜 느끼는 신체 구조를 타고난 걸까?’
사람들은 말한다. 미국인들이 체육관에서 옷을 가볍게 입는 것은 운동을 시작하면 금세 체온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라고. 물론 큰 체구와 근육량, 그리고 어려서부터 다져진 스포츠 문화가 체온 유지에 영향을 주겠지만, 사실 추위에 대한 감각은 인종보다는 개개인의 신체 조건과 살아온 기후 경험이 빚어낸 결과물일 것이다.
미국에서의 직장 생활을 돌이켜보면 한여름의 실내는 그야말로 얼음 창고 같았다. 집과 상점, 교회와 식당 할 것 없이 모든 실내는 냉기로 가득했다. 에어컨 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그 공간에서 나는 기묘한 풍경을 목격하곤 했다. 반소매 차림의 건장한 청년 옆에, 도톰한 스웨터를 꺼내 입은 할머니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 말이다. “에어컨 온도를 조금만 올리면 좋을 텐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이곳에서 실내를 서늘하게 유지하는 것은 이미 오래된 불문율과 같았다.
결국 온도는 상대적인 법이다. 근육량이 많고 활동적인 사람은 열이 넘치고, 나이가 들어 혈류 조절이 더뎌진 이는 작은 냉기에도 몸을 떨기 마련이다. 같은 공간 안에서도 누군가는 시원함을 만끽하고, 누군가는 스웨터를 찾는 것은 국적이나 인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몸이 가진 각기 다른 신체 조건 때문일 터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온도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다. 한국에서는 “좀 덥네요, 온도 좀 낮출까요?” 혹은 “추운데 올리죠”라는 대화가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정해진 설정을 바꾸려 하기보다, 스스로 스웨터를 챙기거나 얼음물을 마시며 환경에 적응하는 쪽을 택한다. 한여름 에어컨 바람 아래서 담요를 덮고 TV를 보는 풍경이 지극히 일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곳이다.
겨울 체육관에서 반바지를 입은 이들과 여름 실내에서 스웨터를 입은 할머니. 어쩌면 동양인인 나는 내 몸을 보호하는 데 집중하고, 그들은 활동의 효율과 개인의 적응에 더 큰 가치를 두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머물면서도 사실 저마다 다른 온도의 방을 하나씩 품고 사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그간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것은 추위 그 자체가 아니었다. ‘조금만 온도를 조절하면 모두가 편할 텐데’라는 내 식의 익숙한 잣대였다. 이제는 조금 추우면 스웨터를 챙기고, 더우면 찬물을 찾는 그들만의 조용한 협상을 이해한다. 그 다름을 받아들이고 나니, 한겨울의 반바지도 한여름의 스웨터도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닌 각자의 삶을 지키는 방식으로 다가온다.
(2026년 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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