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겨울 일기예보를 듣는 법

삼척감자 2026. 1. 24. 22:17

뉴저지에서 산 지 40년이 훌쩍 넘었다. 겨울도 수십 번을 보냈다. 그런데 이상한 기억 하나가 있다. 해마다세기의 폭설이라는 예보는 수도 없이 들었지만, 정말로 숨이 막힐 만큼 퍼부었던 눈은 손에 꼽을 정도라는 사실이다. 눈 소식을 전할 때면 뉴스는 늘 붉은색 경고 지도를 띄우고, 진행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외출을 삼가라고 말하지만, 막상 그날이 되면, 눈이 좀 왔네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눈 예보가 유난히 요란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미국의 기상 예보는 평균이 아니라 최악의 가능성을 기준으로 말한다. 안 오면 다행이지만, 대비하지 못해 사고가 나면 책임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눈은 변덕스럽다. 기온이 몇 도만 달라져도 비로 바뀌고, 폭설의 중심이 조금만 빗나가도 도시는 멀쩡해진다. 특히 바다와 맞닿은 뉴저지는 늘 그 경계선 위에 서 있다.

 

여기에 매스컴의 본능이 더해진다. 눈은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가장 확실한 소재다. ‘폭설 가능성이라는 말 한마디에 클릭 수가 뛰고, 시청률이 오른다. 실제로 내리는 눈보다 화면 속 그래픽이 더 무서울 때도 많다.

 

그렇다고 이 호들갑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정말로 몇십 년에 한 번 찾아오는 폭설 앞에서는, 그 모든 과장이 오히려 부족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다만 긴 세월을 살아온 사람의 기억 속에 남는 겨울은, 늘 떠들썩했던 예보가 아니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세상을 멈춰 세웠던 몇 번의 눈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예보를 듣되, 조금은 여유 있게 창밖을 본다. 눈이 오면 오려니 하고, 오지 않으면 다행이라 여기면서. 그 사이 어딘가에, 이 나라식 겨울의 방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로 폭설이 내려 외출이 힘들어진다면,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이참에 그동안 시청을 미뤄두었던 영화나 봐야겠다. 2천 개 가까이 되는 소장 영화를 모두 볼 수는 없겠지만, 몇 편이라도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라면 재고도 넉넉하고 식자재도 충분히 확보해 두었으니, 먹고사는 일은 걱정 없다. 오랜만에 맛있는 중국 요리나 만들어 볼까. 위스키 두 병, 소주 큰 것 한 병, 와인과 맥주까지…. 간헐적 금주를 했더니 술 재고도 제법 든든하다. 정전에 대비해 랜턴도 챙겨 두었고, 부르스타도 준비해 두었다. 그래도 정전만큼은 없었으면 좋겠다. 아멘.

 

이제는 나이가 들어, 차 주변과 차 위에 쌓인 눈을 치우는 일조차 버겁다. 그래서 이번에도 마음속으로 은근히 바라본다.
이번 폭설 주의보도, 그냥 순 뻥이었으면 좋겠다.”

 

(2026 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