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멈춰 선 아침이 건넨 말

삼척감자 2026. 2. 2. 06:12

유난히 추운 주일 아침이었다. 주일 미사에 참례하려고 채 가시지 않은 냉기를 뚫고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으나, 익숙하게 터져 나와야 할 엔진의 활기찬 진동 대신 '끼릭, 끼릭' 하는 메마른  소리만 돌아왔다. 차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몇 번 더 시동을 걸어보려다 이내 손을 멈췄다. 억지로 깨우려다가는 남은 온기마저 방전될지 모른다는 예감이 스쳤기 때문이다. 서둘러 AAA(미국 자동차협회)에 전화를 걸어 긴급 출동서비스를 요청했다. 휴일 아침이라 혹여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을까 내심 조바심이 났지만, 이내 한 시간 후면 도착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기다림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좀 늦어잘 거라는 연락이 두 번이나 더 왔다. 아마 이 매서운 추위 아래, 나처럼 멈춰 서서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이들이 도처에 서성이고 있는가 보았다. 세 시간이 지나서야 기술자가 도착했다. 그는 익숙한 손길로 충전기를 연결했지만, 차는 여전히 고집스럽게 끼릭 소리만 냈다. 기술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담담하게 선고했다. "배터리가 수명을 다했네요."

 

그의 차 뒷좌석엔 새 배터리가 실려 있으니 원한다면 그걸로 교체해 주셌다고 했다. 이번 봄쯤엔 바꿔야지 하며 미뤄두었던 숙제였다. 그가 제시한 값이 시중 가격과 별 차이가 없기에 결국 숙제를 앞당겨 하기로 했다.

 

잠시 후 새 배터리가 자리를 잡았다. 다시 시동을 거는 순간, '부릉' 하며 엔진이 힘차게 숨을 내쉬었다. 그 소리를 듣는 찰나, 차보다 먼저 내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조바심과 초조함이 빠져나간 자리를 안도감이 채웠다.

 

"겨울의 눈은 아이들에게는 축복이지만, 노인에게는 돌아보라는 경고다"라는 말이 있다. 추운 아침의 엔진 소리는 내게도 비슷한 경고였다. '아직은 괜찮다'며 고집스레 달리고 있던 나의 몸과 마음도, 실은 배터리처럼 소리 없이 닳아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었음을 일깨워주는 신호였다.

 

집 밖은 막막했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전화 한 통에 누군가 달려와 주었고, 지루했던 기다림 끝에 마침내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겨울의 공기는 한결 덜 차갑게 느껴졌다.

 

어쩌면 신앙도 이와 닮아 있지 않을까. 간절한 기다림이 길어질 때조차 '누군가는 오고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마침내 다시 삶의 동력을 얻어 움직이는 것.

 

오늘 아침, 차를 다시 움직이게 한 것은 새 배터리였지만, 남은 하루를 살아갈 힘은 어쩌면 그 막막했던 기다림 속에서 이미 조금씩 충전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2026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