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난 이가 꿈에 나타날 때가 있다. 그러면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그 모습이 쉽게 잊히지 않아 한동안 멍해진다. 왜 하필 지금이었을까, 왜 아무 말도 없이 다녀갔을까. 잠기운이 가시지 않은 채 그런 질문들이 밀려온다.
꿈속에서 만난 이들은 대개 말이 없다. 하지만 그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마음은 출렁인다. 어쩌면 꿈은 기억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가장 조용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낮 동안 애써 눌러두었던 추억이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숨을 쉬고, 마음은 꿈이라는 무대 위에 그 사람을 다시 불러내는 것이다.
쉰 살도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수십 년 세월 동안 잊을만하면 꿈에 나타나셨다. 소문난 술꾼이었던 생전의 모습 그대로, 꿈에서도 늘 취해 계셨다. 반면 몇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는 어쩐 일인지 한 번도 꿈에 보이지 않으신다. 작년 어느 날에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지 두어 해 된 연상의 동서를 꿈에서 만났는데, 매우 건강하고 쾌활한 모습이어서 마음이 참 좋았다.
삶의 고비마다 과거의 사람들이 꿈에 찾아오면 때로는 반갑고 때로는 의아해진다. 나이가 들고 인생의 속도가 느려질수록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세월을 돌아보게 된다. 그 여정의 한복판을 함께 걸었던 이들이 꿈에 나타나는 것은, 지금의 나를 지탱해 온 기억들이 조용히 나를 호출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앙 안에서 이 꿈을 바라보면 또 다른 결이 드러난다. 어쩌면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위로의 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꿈이 남긴 감정이다. 깨어난 뒤 마음이 평온했다면 그것은 위로였을 것이고, 불안이 남았다면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마음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교회는 꿈 그 자체보다 그 이후의 마음 상태를 더 조심스럽게 살피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세상을 떠난 이가 꿈에 나타났을 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마음이 보내는 한 통의 편지이거나, 하느님께서 기억의 문을 잠시 열어주신 시간일 뿐이다.
J 형제가 꿈에 나타나기 시작한 건 그가 세상을 떠나고 두어 달이 지난 후부터였다. 작년 연말을 마지막으로 더는 보이지 않지만, 꿈속의 그는 매번 말없이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 사라지곤 했다. 꿈에서 깨어나면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마치 해야 할 일을 남겨둔 사람처럼 묵직한 기분이 오래도록 머물렀다.
그는 오랜 세월 나와 같은 성당에 다니며 선교와 봉사에 열정을 쏟았던 사람이다. 나는 그 곁에서 가끔 일을 도왔을 뿐이었다. 그는 늘 앞장섰고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보잘것없는 힘을 마지못해 보태는 정도였다. 그는 말보다 행동이 앞섰고, 설명보다는 실천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이였다.
그래서인지 꿈속의 모습도 그다웠다. 어떤 부탁도 당부도 없이 그저 침묵 속에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얼굴을 보고 있으면 말이 없어서 모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말이 없기에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 선명히 떠올랐다. 그를 추억하며 오랜 세월 함께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꿈속에서 그는 말없이 왔다가 말없이 떠났다. 그 얼굴이 남긴 것은 미련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요한 물음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2026년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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