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와인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집콕을 할까

삼척감자 2022. 9. 6. 03:08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사회적 격리가 시작되자 주류 판매가 급상승했다고 한다. 특히, 가게에 가서 사기가 께름칙한 사람들이 많은지 택배로 술을 사는 사람들이 무척 늘었다고 한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아침 열한 시 경부터 술 마시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하긴 요즘같이 심란한 시기에 그런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식당이나 술집이 문을 닫았는데도 호황을 누리는 온라인 술장사들은 이참에 확실히 돈을 벌어야겠다고 작정했는지 이 메일을 열어보면 싸게 빨리 술을 배달해 준다는 광고가 하루에도 몇 건씩 뜬다. 5% 특별 가격 인하, 저렴한 운송비등으로 유혹하지만, 술이란 건 모두 무게가 무거우니 운송비가 장난이 아니다. 5% 인하했다는 술 가격도 가게에서 파는 술보다 비싸니 나같이 영악한 사람은 그런 유혹에 잘 넘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Social distancing is no fun without wine.”라는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와인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집콕을 할까?” 뭐 이런 정도가 되겠다. 이 광고 문안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맞아. 술 없이 이 비상시국을 견딜 수 없지.” 그래서 당장 술 재고를 확인해 보니 싸구려 와인 세 병과 소주 두 병밖에 없었다. 모든 게 정상적으로 돌아갈 때는 그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장 차로 30분 정도 달려가면 열두 병에 $36밖에 안 하는, 싸지만 마실 만한 와인을 파는 트레이더 조스(Trader Joe’s)가 있으니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이 어느 때인가?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생소한 말에 익숙해져야 하는 때란 말이다. 그래도 운전기사인 아내를 설득해서 다녀오면 되지만, 고작 와인에 위험을 무릅쓰자고 말할 염치가 없다. 그리고 필라델피아에서 텔레파시로 우리 동정을 살피고 있을 큰딸이 알면 벼락이 떨어질 테니 그 짓을 못하겠다. 나이 든 부모가 식품을 사러 외출할까 봐 우리 동네에 있는 식품점에 택배로 식자재를 주문해 주며, 혹시라도 외출할 마음을 먹고 있는지 가끔 전화해서 떠보는 큰딸의 눈초리가 느껴져서 외출을 포기했다.

 

그래도 술 재고를 생각하니 불안했다. “비싸도 필요한 건 사야지.”라고 합리화하며 아내 몰래 덜컥 주문해 버렸다. 술 열두 병이 우리 집 문 앞으로 배달된다는데 비용이 문제인가? 그러고 얼마 후 이 메일로 받은 영수증을 확인해 보고 조금 후회가 되었다. 배꼽(운송비)이 배(술값)보다 크지는 않았지만, 절반 가까이 되는 걸 보고 순간 내가 미쳤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술 재고가 떨어지는 절망적인 상황보다는 바가지를 쓰고 배 아파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자위했다.

 

며칠 후 일리노이 주 어딘가에서 왔다는 술이 배달되고 텔레비전 스탠드 밑에 세워둔 열 몇 병의 와인을 보니 마음이 넉넉해졌다. 그래서 매일 저녁 식사 때마다 마시다 보니 술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다시 택배로 술을 주문하면 편하기는 하겠지만, 아내 눈치가 보이고 적지 않은 운송료를 생각하니 아까웠다. 먼 거리에 있는 트레이더 조스에 가려니 눈치도 보이지만,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방법은 하나다. 아주 아껴서 마시거나 안 마셔서 남은 재고로 최대한 오래 버티는 거다. 그래서 하루에 와인 한 병의 3분의 1 정도를 잔에 따라서 마셔서 한 병으로 사흘을 버티는 거다. 그러고 한 사나흘 정도는 안 마신다. 그러면 12병으로 그럭저럭 두 달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술 덜 마시면 건강에도 좋다니 반드시 그렇게 해 볼 참이다. 돈 아까워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놈의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이런 궁상을 떨어야 하는 내 신세가 참 처량하다. 그런데 남은 술이 다 떨어지기 전에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세가 꺾여서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2020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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