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어둠 속의 큰 빛이라는 백신

삼척감자 2022. 9. 5. 02:11

지난 1년 동안 코로나바이러스로 뒤덮힌 어둠 속에서, 백신은 많은 이들에게 빛을 밝혀 주었다. 언론에 보도된 백신의 효능은 기대 이상이어서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이사 9, 1) 라는 성경 구절이 저절로 생각나게 했다.

 

언론 보도에 고무되었는지 매일 수많은 이들이 백신 접종을 받기 위해 기꺼이 팔을 내밀고 있지만, 접종 대상자에 비해 그런 행운을 잡은 사람은 터무니없이 적다. 그래서 이 겨울에 화이저와 모더나 백신 때문에 많은 이들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미국 전역의 기저 질환자와 65세 이상인 우선 접종 대상자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백신 생산과 접종이 무계획적이고 혼란스럽다라고.

 

백신을 접종받기 위해 끝없이 이어지는 긴 줄에 서 있어본 사람도 적지 않고, 접종 예약을 받는 전화나 웹사이트가 접수 폭주로 불통되어 답답해한 사람들도 수없이 많다. 예약하지 않고 요행을 바라며 긴 줄의 끝에서 무작정 기다리다가 행운을 잡았다는 사람들의 무용담도 가끔 들렸다. (초기에는 그런 꼼수도 통했지만, 요즈음은 예약 없이 온 사람에게는 절대로 접종해 주지 않는다고 한다.)

 

초기에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만 해도 나는 별로 서둘러 백신을 맞을 생각이 없었다. “인명재천이라는데 뭐 그리 안달하냐라고 짐짓 여유를 부렸다. 아는 이들이 하나둘씩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고생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도 그랬다. 그래도 언젠가는 백신을 맞아야 할 것 같아서 주 정부의 웹사이트에 접종 대상자로 등록해 놓고, 카운티 정부의 웹사이트에도 예약해 두고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온종일 주 정부에서 알려 준 웹사이트에 접속해도 모든 접종소가 신청자 폭주로 당분간 접수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접속하고 또 접속하다가 접수를 한다는 안내문을 보고 신청했더니 그 잠깐 사이에 인원이 모두 차서 접수를 중단한다는 안내문을 보고 맥이 풀렸다.” 이런 기사를 신문에서 보니 백신을 꼭 맞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이들이 하나둘씩 백신을 맞았다는 얘기를 들으니 슬슬 마음이 바빠졌고, 다들 맞고 있는데 나만 소외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주 정부에서 받은 이메일을 다시 확인해 보니 귀하의 등록 신청이 접수되었습니다. 접종 장소와 일시는 나중에 알려 드릴 것이나, 개인적으로 접종처를 선택하여 예약 접수하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글쎄 두 달 가까이 지났지만, 아무 연락이 없는 주 정부를 믿을 수 있을까? 어쩐지 내 이름만 빠진 것 같았다. 내가 알아서 신청해야지. 그래서 우리 카운티 내의 접종처 목록을 보니 수십 개가 넘는 업소가 보였다. 집에서 가까운 약국, 병원도 있어서 편하게 접종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순서대로 신청해 보기로 했다.  

 

막상 신청해 보니 남들 얘기가 바로 내 얘기가 되었다. 아침부터 밤중까지 틈나는 대로 여기저기 접속해서 신청하려 했지만, “죄송합니다. 접수를 할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문만 보기 일쑤였다. 어쩌다 그런 안내문이 없는 웹사이트를 보고 열심히 신청에 필요한 항목을 메꾸고 나면 그사이에 인원이 차서 죄송합니다. 다음에 다시 신청해 주십시오.”라는 안내문이 떠서 맥 풀린 적도 많았다. 그런데도 오기가 생겨서 더 열심히 컴퓨터에 매달리다가 어느 날 자정 가까운 시간에 운 좋게 예약에 성공했다. 집에서 70마일(112km)이나 떨어진 먼 곳이었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드디어 2웗 말에 1차 백신을 접종받고, 3월 중순에 있을 2차 백신 접종을 기다리고 있는데, 주 정부로부터 올 접종 연락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나이 드신 분들을 보면 괜히 죄송스럽다. 주 정부에서는 각자 알아서 맞으라는 무책임한 안내를 하기에 앞서 그런 분들부터 우선 접종해 드려야 할 텐데.

 

어느 신문 기사에서 본 구절이 떠오른다.

The light is at the end of the tunnel. But nobody can reach it. (터널 끝에 빛이 보이나, 아무도 거기에 닿을 수 없다.)

 

(2021 3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