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쉽게 들어온 돈은 쉽게 나가더라

삼척감자 2022. 9. 5. 02:00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침체된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 고소득층을 제외한 모든 미국 시민권자에게 경기 부양금(Stimulus Check)이라는 명목으로 1인당 $1,200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주겠다고 국회에서 논의가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의아했다. 우리 부부는 은퇴해서 직업이 없는 사람이니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수입이 준 것도 아닌데 왜 우리가 그런 돈을 받아야 할까? 그런 돈은 자영업자나 실직자처럼 직접 타격을 받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이렇게 퍼주어도 국가 재정에 문제는 없을까? 그래도 생각지도 않은 돈이 생긴다니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1 stimulus check라는 돈 $2,400(1인당 $1,200)이 부부 공동명의의 은행 계좌로 입금되었다. 받고 나니 괜히 미안해서 뜻있게 사용하려고 마음먹었다. 적어도 절반은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쓰려고 했는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돈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주행거리 17만 마일(27 km) 된 차의 엔진에서 소음이 크게 나기 시작했다. 딜러에 가서 점검을 받아보니 배기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으니 거의 $4,000 들여 수리하라고 했다. 엄청난 수리비에 놀라서 동네 정비소에 몰고 가서 우여곡절 끝에 수리를 마치니(사실은 눈뜨고 사기를 당했다) 거의 $2,000 가까운 돈이 들었다. $2,400이라는 공돈을 받고 좋아했는데 불과 며칠 만에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나니 허탈했지만,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空手來空手去是人生)'이거니 생각하며 허전한 마음을 달랬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국회에서 제2차 경기 부양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더니 몇 달 동안 온통 시끄러웠다. “많이 주어야 한다. 아니다. 국가 재정에 문제가 생기니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는 양당의 주장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니 머리가 아팠다. 좀 띨띨해 보이는 므느신과 강퍅해 보이는 펠로시의 얼굴만 보아도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아이고 머리 아파. 그런 돈을 내가 언제 달라고 했나?”

 

그래도 올해 11일 새벽에 일어나 국세청에서 보낸 돈 $1,200이 입금된 걸 확인하니 기분이 좋았다. 이게 공화당 덕인지, 민주당 덕인지는 알 바 없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보람있게 쓰리라 다짐했다. 우선 최근에 실직한 백수 두 부부에게 저녁부터 호기롭게 대접했다. 그러고 다음 날인가, 다음다음 날인가, 몹시 추운 날이었는데, 자동차 히터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었다. 돈 몇 푼 들여 자동 온도조절기(서모스탯)나 교체하면 되겠거니 생각하고 자동차 딜러에 끌고 갔더니 라디에이터가 새니 새것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10% 할인받은 수리비는 $1,195이었다. 이번에도 돈 냄새를 맡고 때맞추어 고장 나는 차느님이 야속했지만, 어쩌랴. 체념할 수밖에.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인 것을.

 

오늘 아침 대통령 당선인 바이든이 제3차 경기 부양 방안에 대하여 발표했다. 상하원에서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우리 은행 계좌에는 $2,800이라는 적지 않은 돈이 또 들어올 것이다. 그 소식을 들으니 덜컥 겁이 난다. 돈 냄새를 잘 맡는 우리 차느님이 또 그 돈을 잡수실 궁리를 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정치인들이 뭐라 해도 그 돈에 마음이 흔들려 표를 줄 일은 없을 것이다. 받을 것은 받고, 표는 내 소신껏 찍을 것이니 정치인들은 제발 헛물켜지 마시라.

 

성당 교우 B 씨에게 “공돈이 생기면 뭐 하느냐? 돈 쓸 일이 바로 생겨 버리는데”라고 푸념했더니, “돈 쓸 일이 생기기 며칠 전에 때맞춰 공돈이 생기니 고마운 일이 아니냐?”라는 답변을 들었다.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안 나가도 될 돈이 나갔다고 생각하는 나와는 달리 신앙심이 깊은 그는 꼭 필요한 돈을 하느님이 마련해 주신 거라고 했다. 아멘.

 

Easy come, easy go라는 영어 속담이 있다. “노력 없이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없어진다라는 말인데 두 번이나 경기 부양금을 거저 받아보니 그 말이 맞기는 맞는 것 같다. 3차 부양금이 나오면 어디에 쓸까? 미리 오두방정 떨지 말고 이번에는 느긋하게 기다려 보아야 하겠다. 차느님, 이번에는 제발 눈감아 주셔.

 

(2021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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