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미국의 의원(doctor’s office 또는 clinic. 속칭 동네 병원)과 병원(Hospital)에 대해서 알아보자.
의원은 대개 한 명의 의사가 개인 진료실을 두고 외래 환자들에게 초기 진료를 제공하며 필요할 경우 치료 약을 처방한다. 대개 평일 낮에만 운영하며 주중에 쉴 때도 있다. 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병상이 없고, 고가의 검사용 장비나 진료 장비 또는 응급 치료용 장비가 구비되어 있지 않다. 의원의 의사가 직접 수술할 경우에는 종합병원의 수술실을 빌려서 시행한다.
병원은 대형 건물에서 많은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다. 병원은 하루 24시간 운영되며, 많은 의사가 여러 가지 분야의 환자들을 치료한다. 병원에는 환자가 입원하여 치료받을 수 있도록 많은 병상을 갖춰져 있다. 검사 및 치료용 고가의 장비도 구비하고 있다.
위중한 환자가 의원을 방문할 경우, 의사는 신속하게 그를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하도록 하므로 병원과는 달리 의원에서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대개의 의원에는 응급조치용 장비가 아예 구비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응급 환자는 의원이 아니라 병원의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 더욱 신속한 조치가 필요할 경우에는 구급차를 이용하면 전문 요원이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라도 차 안에서 응급조치를 취하고 신속하게 병원에 연락하여 미리 대비하도록 한다.
개인이 운영하는 의원은 보험이 없는 일반 환자를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연방법에 따르면 종합 병원에서는 환자가 보험이 없더라도 응급환자를 거부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보험이 없는 환자가 의학적으로 긴급한 상황일 때는 종합병원 응급실로 가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연방법의 입법 취지는 “Treat first, ask questions later” 즉, “먼저 환자를 돌보고, 의료비는 나중에 따져라.”라고 한다.
나도 이 연방법의 혜택을 본 사람이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병원비를 일정액까지만 보상받는 자동차 보험만 있었을 뿐, 의료 보험은 들지 않았었다. 사고 후 실려 가서 여러 달 입원한 대학병원에서는 보험이 없다는 이유로 엄청난 비용이 드는 진료를 소홀히 하거나 거부한 적이 없었다.
언젠가 어느 노숙자가 우리 가게에 들어와서 전화를 좀 쓰겠다고 하더니 구급차를 불렀다. 금세 나타난 구급차 요원들은 그에게 별다른 질문도 하지 않고 바로 근처에 있는 종합 병원으로 데려갔다. 나중에 들으니 병원에서는 응급환자를 거부할 수 없으니 일단 검진을 하고 필요하면 입원도 시켜준다고 한다. 뉴욕 등 대도시에서는 멀쩡한 사람들이 연방법을 악용해서 구급차로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서는 슬그머니 사라지는 사례가 잦아 ‘구급차를 택시로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신문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출산 직전의 임산부가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면 응급환자 대접을 받는다. 이걸 악용해서 한국에서 방문한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들(물론 미국 의료 보험이 없다.)이 무료로 출산 혜택을 받고(병원에서는 여행자에게 병원비를 받아낼 재간이 없다) 아이에게 미국 시민권을 취득할 기회를 주는, 이른바 원정 출산의 사례가 적지 않아 사회적 물의를 빚으니 같은 동포로서 낯 뜨겁다. 앞으로는 미국의 친지가 병원비 지불의 보증을 서게할 거라고 하니 조심해야 한다.
얼마 전에 보도된 한국 신문의 기사를 보자. “4월 18일에 사망한 윌리엄 황(17세-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랭캐스터)은 그가 첫 번째 방문했던 병원에서 진료 거부를 당합니다. 그 병원은 의료보험으로만 운영되는 병원이었는데 그가 의료보험이 없었던 것이 진료 거부 사유였습니다. 이 소년은 공립 병원으로 이동을 하게 되고 그사이 심장마비를 겪게 됩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심폐소생술로 응급 처치를 받은 황군은 6시간 후에 끝내 사망하게 됩니다. (중략) 소년의 사연이 참 안타깝네요. 같은 민족이라 그런지 더더욱 맘이 아픕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한국의 의료 체계가 얼마나 우수한지도 깨닫는 순간이네요.”
이 기사에 나오는 첫 번째 병원은 아마 동네 의원이었던 같다. 거기서 환자를 거부한 이유는 두 가지였을 것이다. 첫째로는 환자의 상태가 응급상황이라서 그런 진료를 할 설비가 없는 의원은 환자를 제대로 돌볼 수 있는 종합 병원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둘째로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동네 의원에서는 보험이 없는 환자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그게 불법도 아니다.
그런데 환자의 가족이 미국의 의료 체계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었다면 처음부터 보험도 없는 응급환자를 동네 의원에 보낼 것이 아니라 바로 병원 응급실로 보냈더라면 길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깝다. 미국에 살면서 미국의 의료 체계를 잘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야 할 언론이 엉뚱하게 이 사건을 두고 한국 의료 체계의 우월성이나 거론하니 입맛이 쓰다. 그렇다고 미국 의료 체계를 악용하여 원정 출산을 장려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2020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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