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헬스클럽에서 다녀오는 길에 보니 온통 분홍색 꽃으로 뒤덮인 나무들이 길가에 늘어서 있기에 나도 모르게 “야~”라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더니 운전하던 아내가 왜 갑자기 소리를 질러서 사람을 놀라게 하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아침 산책길에 만난 지그(Zyg)라는 아저씨에게 막 움튼 나뭇가지를 가리키며 곧 봄이 올 것 같다고 말했더니 “아직 쌀쌀하기는 하지만, 최소한 눈은 내리지 않겠네.”라는 대답을 들은 게 두어 주 전이었는데, 늘 지나다니는 길가 화단에는 땅속에 숨어 있던 수선화가 벌써 머리를 제법 많이 내밀었다.
며칠 전부터 “삐삐삐빅” 하고 네 음절씩 끊어서 노래하는 개똥지빠귀(American Robin)가 집 주위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겨우내 눈에 띄지 않던 야생 비둘기(Mourning Dove)도 며칠 사이에 두 번이나 나타났다. 청승맞게 운다고 ‘슬퍼하는 비둘기’라는 이름을 가진 이놈도 봄이라는 좋은 계절이라서 그런지 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볼 뿐 슬프게 울지는 않았다.
몇 달간의 추위가 물러가고 드디어 봄이 오면 우리 주위의 사물은 생기를 되찾는다. 나무에 움이 트고 땅에서 싹이 터 올라 올뿐만 아니라 사람도 활력을 되찾는다. 그래서 나는 모든 걸 새로 시작하는 봄의 첫째 달을 한 해의 첫머리에 두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춥고도 긴 겨울이 끝나갈 무렵에 가장 즐거운 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창문을 열면 따사로운 봄기운이 들어오는 걸 느낄 수 있는 것도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잦아지기 시작할 때 부터이다. 바야흐로 꽃의 여신이자 봄의 여신인 클로리스가 기지개를 켜고 활동을 시작할 때이다.
지난겨울은 참 따뜻했다. 눈다운 눈도 내리지 않았고, 기온도 그리 낮지 않아서 눈을 치우거나 자동차 유리창이 얼어서 그걸 긁어 내느라 고생한 기억이 없다. 따뜻한 날씨 덕분에 다람쥐도 묻어 둔 도토리 찾기가 수월했는지 뜰에는 이놈들이 파놓은 손톱만 한 구멍 천지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다람쥐가 나무를 오르락내리락, 뜰을 들락날락하며 구멍을 파서 숨겨놓은 도토리를 찾아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걸 바라보기만 해도 심심하지 않았다.
이제 꽃이 피기 시작했으니 우리 집 주위에 개나리, 벚꽃, 목련, 도그 우드(dogwood)…등의 꽃이 연이어 피면 세상이 아름다워질 것이다. 그런데 올봄은 봄맞이가 그리 즐겁지 않다. 우한 폐렴 때문에 온 세상이 어수선하고, 선거를 앞두고 좌파와 우파로 갈려서 극단적인 투쟁만 일삼는 고국의 정치 현실을 보면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어서 하 수상한 시절이 지나가고 비발디의 사계를 틀어놓고 그가 묘사했다는 다음 봄 풍경을 한가롭게 감상하면 좋으련만.
"그리하여 새들은 즐거운 노래로써 봄에게 인사한다."
"그때 샘물은 나부끼는 산들바람에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하늘은 어두워지고 벼락과 천둥소리가 봄을 알린다."
"이 즐겁게 꽃피는~~ 낮잠에 취해 있다."
"인부들과 ~~ 춤추고 있다."
(2020년 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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