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다람쥐의 횡액

삼척감자 2022. 9. 3. 04:00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짐승은 다람쥐 아니면 개똥지빠귀(American Robin).

 

가을이 깊어가는 요즈음 산책길에서 나무를 오르내리거나 길바닥을 뛰어가는 다람쥐를 흔히 볼 수 있다. 다람쥐라는 말의 어원은 ‘ㄷ(아래 아)ㄹᆞㅁ+쥐로서,  ᆞㅁ’은 ‘달리다(走)’라는 뜻인 ‘ㄷᆞㄷ다’의 명사형이라고 하니, 재빠르게 잘 달리는 쥐라는 뜻으로 생긴 단어로서, 현대어로 굳이 바꾸면 달리는 쥐 정도가 된다고 한다.

 

집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람쥐는 두 종류가 있다. 몸집이 쥐보다 조금 크고 꼬리가 몸길이 만큼 긴 회색 다람쥐는 영어로 Squirrel이라고 하는데 긴 꼬리를 나풀거리며 팔짝팔짝 뛰다가 나를 만나면 힐끔 쳐다보며 머뭇거리다가는 바로 뛰어간다. 때로는 별 의미 없이 재주넘기를 하는데 그럴 때는 나를 관객으로 생각하는 발레리나처럼 보인다. 요즈음은 도토리나무에 도토리가 지천으로 열렸는데, 그 근처를 지나다 보면 으레 나뭇가지 사이로 다람쥐 두어 마리가 보이고 내 머리 위나 근처의 자동차 지붕 위로 먹다 버린 도토리 조각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나무 밑의 길바닥을 보면 그런 조각들이 무척 많이 눈에 띈다. 그래서 산책할 때 도토리 조각이 수두룩하게 흩뿌려진 나무 밑은 피해서 다닌다. 그런데 이놈들은 왜 먹이를 말끔하게 다 먹어 치우지 않고 먹다 말고 버리는 걸까?

 

몸집은 생쥐처럼 작은데 등에 세로로 얼룩무늬가 있는 다람쥐는 영어로 Chipmunk라고 하는데 별로 길지 않은 꼬리를 곧추세워서 빨빨거리며 걷는데 그 속도가 무척 빠르다. 나무를 타는 건 별로 볼 수 없고 대개는 땅 위에서 바삐 움직이다가 사람을 만나면 얼른 땅속에 뚫은 집으로 도망친다. 작은 양쪽 볼 주머니가 미어지도록 도토리를 넣고는 땅속의 둥지로 옮기는 걸 볼 수 있다.

 

며칠 전 산책길에서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는 걸 보았다. 가끔 보이던 검정과 흰색 무늬가 얼룩덜룩한 고양이었는데 내가 다가가는데도 움직이지 않고 무언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몸을 일으키는데, 그 시선 가는 데를 나도 눈으로 좇아보니 바로 얼룩무늬 다람쥐가 무심코 먹이를 탐하고 있었다. 고양이가 몸을 일으켜 다람쥐에게 다가가니 그제야 위험을 느낀 다람쥐가 재빨리 도망치는 걸 고양이가 눈 깜짝할 사이에 덮치는가 했더니 고양이 입에 축 늘어진 다람쥐가 물려 있었다. 그걸 물고 재빨리 길을 건너 하수구 안쪽으로 달아나는 걸 보니 아마도 그 길고양이 소굴이 거기에 있는 것 같았다. 거기서 사냥감의 껍질을 벗기고 식사를 즐길 고양이를 생각하니 평화로운 산책길이 온통 먹고 먹히는 전쟁터로 보였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면 나뭇가지 사이에 거미줄을 쳐놓고 먹잇감을 기다리는 거미를 보게 된다. 대개는 눈먼 벌레는 보이지 않으니 거미가 굶주릴 것 같다. 그 거미줄마저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망가지니 매일 그물을 새로 만들어 쳐야 하는 거미의 삶도 참 고달파 보인다.

 

아침 일찍 만나는 개똥지빠귀나 찌르레기의 입에 벌레가 물려 있을 때가 있다. 사냥에 지쳐서인지 내가 다가가도 바로 날아가지 않고 마지 못 해 부근의 다른 나무로 옮기는데 그놈들이야 아침거리를 장만했으니 다행이지만 아침 일찍 일어났다가 새의 먹이가 되는 벌레에게는 그보다 더한 횡액이 없겠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그러나 늦게 일어나는 벌레는 일찍 일어나는 새에게 먹히지 않는다.” (The early bird gets the worm, but the late worm doesn’t get eaten by the early bird.) 이런 말은 참 부질없다. 세상은 어차피 약육강식의 세계이니 일찍 일어나든 늦게 일어나든 벌레는 새들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새는 시간 가리지 않고 배부를 때까지 먹이를 찾을 테니까.

 

하늘 높이 독수리 두어 마리가 맴을 도는 게 보인다. 아마도 동물의 사체를 찾고 있나보다.

 

(2020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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