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나는 개를 못 키우겠네

삼척감자 2022. 9. 3. 03:55

우리 이웃에 개를 기르는 집이 대여섯 집이 있어서, 산책길에서 그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개와 함께 산책하는 그들을 보면 개는 주인을 닮는다.”라는  말이 저절로 생각날 정도로 개와 주인의 모습과 성격은 서로 닮은 것 같다. 그러니까 사람 같은 개와 개 같은 사람이 산책하는 걸 보게 되는 셈이다. 미국인들이 반려견을 각별히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산책길에서 만나는 개 주인들의 표정은 마치 하기 싫은 숙제를 하러 나온 사람들처럼 그리 밝지 않다.

 

얼굴을 찌푸리고 머리를 흐트러뜨린 키가 작은 할머니와 함께 걷는 개는 앞머리의 털이 눈을 덮고 있고 체구도 자그마한데, 사람을 보면 눈치를 보며 할머니 뒤로 숨으려고 하는 겁먹은 듯한 모습이 주인을 빼닮았다. 작달막하고 좀 부산스러운 아저씨와 산책하는 개도 작달막한 체구에 사람을 보면 아는 체하며 달려드는 게 주인을 빼닮았다. 늘 우울한 표정의 뚱뚱한 할머니와 걷는 개는 배가 불룩해서 걷는 것도 힘겨워 보이고 마지못해 끌려다닌다는 모습이 우울해 보인다. 그들을 보면 응접실에서 할머니와 개가 군것질거리를 열심히 먹는 모습이 떠올라서 웃음을 짓게 된다.

 

그들 중에서도 안경 낀 곱슬머리 아저씨와 안경 낀 개가 산책하는 모습은 우습고도 슬프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을 것만 같은 아저씨는 어쩌다 나와 마주치면 “Have a good day, sir. Bye.”라며 깍듯이 인사를 차리고 바로 외면하는 게 무척 내성적인 사람 같았다. 얼마 전부터 안경을 걸치기 시작한 그의 개는 건강이 무척 나쁜지 그가 앞에서 목줄을 끌어야 마지못해 어그적 거리며 걸으며 계단도 오르지 못해 늘 경사로로 오르내렸다. 슬픈 표정으로 개를 끄는 그도 건강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개의 건강 관리를 위해서인지 하루에도 여러 차례 개를 끌고 느릿느릿 산책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했다. 아내에게 그들의 얘기를 전할 때는 비실남과 비실견이라 줄여서 부른다.

 

며칠 전에 외출에서 돌아오는 그를 만났더니 늘 그와 함께 다니던 개가 보이지 않았고, 그는 뜻밖에도 보행 보조기(Walker)를 짚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개는 왜 보이지 않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의 표정이 너무 슬퍼 보였고, 평소에도 대화를 피하던 그가 말없이 손짓하며 어서 가라고 하기에 바로 헤어졌다. 분명히 그의 개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 같았다. 하루에도 몇 차례 산책길에서 만나던 그를 며칠이나 못 보았다. 비실견은 세상을 떠났겠지만, 비실남은 왜 보이지 않을까?

 

천국과 지상을 이어주는 무지개다리가 있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에게 사랑받던 동물은 죽으면 이 다리를 건너 살기 좋은 초원으로 가서 다시 젊고 건강해진다고 한다. 이 동물은 거기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지내지만, 늘 자신을 사랑하던 주인을 그리워한다고 한다. 마침내 주인이 죽으면 다시 만나서 주인과 함께 천국으로 가서 다시는 헤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아름다운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인생과 견생이 다른데 그럴 리야 있겠나?

 

어릴 적에 우리 집에서는 거의 언제나 개를 길렀다. 도꾸, 메리, 마루, 워리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길렀던 개의 이름은 신탕이었는데 그놈은 이름값을 하느라 그랬는지 결국 보신탕 재료로 개장수에게 팔렸다. 그들은 늘 줄에 묶여서 마당에서 지냈는데, 사람이 먹다 남은 음식을 이것저것 섞은 다음 고추장을 조금 타서 먹였는데, 어쩌다 고추장을 타지 않으면 금세 알아보고 맛이 없다고 낑낑거렸다.  

 

우리 가족은 인견유별(人犬有別)이라 생각하여 개를 음식 찌꺼기 처리하는 짐승이나 집지킴이 정도로 생각했지, 특별히 사랑을 나누지는 않았다. 개가 방으로 들어오는 건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냥 서로 개 사람 보듯, 사람 개 보듯 덤덤히 지내다가 적당한 때에 개장수에게 처분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개를 보면 사랑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물리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 짐승 정도로 생각된다. 아침마다 운동도 시키고 배변도 처리할 겸 개를 끌고 산책하는 미국인들의 유별난 개 사랑을 보면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나이들어서 그렇게 살까? 덩치가 큰 개를 먹이려면 사룟값도 적지 않게 들 테고, 집안에서 부르르 몸을 떨면 털도 무척 날릴 테고. 냄새는 어찌 감당하려고? 아침 저녁 산책에다가 배변 처리는 물론 예방 접종과 이발까지. 아이고, 나는 개를 못 키우겠네.

 

(2021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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