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개똥인지 지빠귀인지

삼척감자 2022. 9. 2. 22:40

“매기의 추억”으로 잘 알려진 노래의 영문 가사를 한국어로 다시 번역해서 소개한 적이 있었다.

영문 가사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매기, 나는 오늘 언덕을 거닐었다오(I wandered today to the hill, Maggie). 시작되는 가사가 널리 알려져 있고,

“매기, 숲에는 제비꽃 향기가 가득했소(The violets were scenting the woods, Maggie). 시작되는 가사도 있는데 가사의 내용은 매우 달랐지만, 로맨틱한 분위기를 느낄 있는 게 “옛날의 금잔디 동산에”로 시작되는 동요 조의 한국어 번안 가사보다 마음에 들었다.

 

“매기, 숲에는 제비꽃 향기가 가득했소.”로 시작되는 가사의 두 번째 연에 나오는 ”A robin sang loud from a tree.”에서 새 이름인 Robin을 번역하기가 참으로 난감하였다. 사전에 나오는 그대로 미국 개똥지빠귀로 번역하면 너무 길어서 가사의 운율이 깨어지고, 줄여서 개똥지빠귀, 지빠귀 아니면 울새, 어느 것으로 번역해도 가사 본래의 로맨틱한 분위기가 깨어진다. 왜 이 새의 이름에 지저분한 개똥이 들어가야 하며 족보에도 없는 귀신을 연상시키는 지빠귀는 어째서 들어갈까? 어쩔 수 없이 Robin을 로빈으로 아래와 같이 번역했다.

“숲에는 밤꽃이 피어나고 로빈이 요란하게 지저귈 때

내가 당신만 사랑한다고 처음으로 고백하자

매기, 당신도 나만을 사랑한다고 했지요.”

 

우리 집 부근에는 로빈인지, 개똥지빠귀인지 골치 아픈 이름을 가진 이름을 가진 이 새가 무척 많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의 블라인드를 열고 내다보면 으레 배 색깔이 주황색인 이 새가 눈에 띄고. 산책할 때마다 나를 물끄러미 관찰하는 좀 뻔뻔스러워 보이는 이 새를 만나게 된다. 개똥처럼 흔하다고 개똥지빠귀인가? 그래도 찟찟찟아니면 찟찟찟찟하고 세 음절 또는 네 음절로 지저귀는 소리는 청아해서 듣기가 좋다.

 

오늘 새벽에 요란스러운 새 소리에 잠이 깨었다. 여느 때와는 달리 여섯 음절이나 일곱 음절을 반복하여 지저귀었지만, 분명히 로빈이었다. 귀 기울여 들어보니찟찟찟찟찟찟찟이라고 높은 소리로 한 놈이 목청껏 지저귀면 가까운 곳에서 다른 놈이 그 소리를 받아서 나지막하게 찌짓 찌짓이라고 소리 내는 게 들렸다. 한참 듣다 보니 잠은 멀리 달아나 버렸다. 시계를 보니 세 시 반 밖에 되지 않았다. “에이, 개똥인지 지빠귀인지 때문에 잠자기는 다 글렀네.”라고 구시렁거리며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서 새들이 짝짓기 철이 아닐 때도 왜 아침에 요란스럽게 지저귀는지 알아보았더니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추정된다고 한다.

째, 조류는 빛에 민감하다. 조류의 뇌는 피부를 통과하여 들어오는 빛을 직접 감수하므로 빛에 민감해서 아침 일찍 해 뜰 무렵에 깨어서 지저귄다.

둘째, 자기 영역을 표시하려는 의도로 요란하게 지저귄다는 것이다.

아무리 읽어보아도 왜 개똥인지 지빠귀인지 하는 새는 사람이 자는 꼭두새벽에 단잠을 깨우는지 시원스럽게 이해되지 않는다.

 

성호 이익 선생이 쓴 ‘노인의 열 가지 좌절’이라는 글에 "낮에는 꾸벅꾸벅 졸지만, 밤에는 잠이 오지 않고”라는 구절이 나온다던데 나이 들어가니 그 말이 맞는다는 걸 느낀다. 낮에는 졸려서 의자에 앉은 채 시도 때도 없이 잠깐씩 잠에 빠지는데, 밤에는 잠을 깊이 잘 수 없어서 늘 피곤한 나는 꼭두새벽에 이상한 이름을 가진 새가 목청껏 노래하면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2020년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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