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공동체

천년도 당신 눈에는

삼척감자 2022. 9. 7. 05:11

당신께서는 인간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아, 돌아가라.”

정녕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야경의 한때와도 같습니다. 당신께서 그들을 쓸어 내시면 그들은 아침잠과도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도 같습니다. 아침에 돋아났다 사라져 갑니다. 저녁에 시들어 말라 버립니다. (사편 90, 4-6)                                                                     

 

성경에서 시편은 기도, 찬양, 찬미, 탄원, 감사 등이 표현된 수많은 시가 모여서 이루어진 책이다. 비슷한 표현의 시들이 반복되니 나처럼 신앙심이 깊지 않은 사람에게는 시편 읽기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미사나 연도 등의 전례에서 사용되어 많이 대한 구절을 보면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보려고 애쓰는 편이다. 오늘 아침에 읽은 시편 90편을 읽으며 거의 40년 전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2월 초순 겨울의 한 가운데인 어느 날 이웃에 살던 직장 후배의 아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태어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자다가 원인불명으로 세상을 떠났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밤새 내린 함박눈이 제법 많이 쌓인 길을 달려 장례식장으로 가며 죄없이 세상을 떠나는 아이의 영혼은 어디로 갈지 궁금해졌다. 눈처럼 깨끗하니 천국으로 바로 갈까? 아니면 아기 천사가 될까? 아무려나 태어나서 겨우 두 달이라는 짧은 생을 마친 그 아이의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왜 그렇게 서둘러 이 세상을 떠나며 부모에게 진한 슬픔을 남겨야 했을까?

 

장난감처럼 작은 관에 하얀 옷을 입고 누운 아기의 모습은 정말 예뻤다. 가톨릭에서는 아기가 세상을 떠나면 깨끗한 영혼이 하느님과 만나는 걸 기뻐하는 의미로 기쁨의 상징인 하얀색 옷을 입힌다고 하지만, 그건 살아남은 이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한 게 아닐까? 도대체 저세상에 간 이들 중 누구라도 다시 이 세상에 돌아와 사람들에게 자세히 알려주면 좋으련만.

 

장의사에서 거행된 장례미사에서 부른 가톨릭 성가 423번 “천년도 당신 눈에는”은 시편 90편을 내용으로 작사한 것인데 가사(1)천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마치 한 토막 밤과도 비슷하나이다. 주여 당신만은 영원히 계시나이다. 주여 당신만은 영원히 계시나이다.” 인데 그 성가를 부르며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아직 이른 삼십 대 초반 젊은 나이인 나도 진한 슬픔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이 성가를 들을 때마다 태어나고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난 그 아이의 장례미사가 생각난다.

 

아침에 피었다가 푸르렀다가 저녁에 시들어서 말라버리나이다라는 3절을 들으며 도대체 두 달 만에 생을 마친 아기는 왜 저녁까지 지내보지 못 하고 바로 떠났을까? “주여 당신만은 영원히 계시나이다라는 후렴구는 아기 부모에게 위로를 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40년 세월이 지나며 수없이 많은 장례미사에 참례하였다. 나이 드신 분들이 세상을 떠날 때는 그리 슬프지 않았지만, 사고나 병으로 많지 않은 나이에 떠나는 분들의 미사에 참례할 때는 왜 그분들은 시들어 말라 버린다는 저녁을 맞아 보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지 안타까웠다.

 

내 나이 일흔을 넘기고 가까운 이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걸 보게되니 천년도 당신 눈에는이라는 성가가 가슴에 와닿는다. 사실 우리 존재는 보잘 것이 없다. 성공한 사람들이 누리는 이 세상에서의 부귀영화도 머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그런 게 모두 이 세상에서 잠깐 동안 누릴 수 있는 것일 뿐이라 생각하면 가진 게 많다고 교만을 떨어서도 안 되고, 가진 게 적다고 주눅이 들 이유도 없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사람들아, 돌아가라라고 하셨다지 않은가. 우리 모두 언젠가는 빈손인 채 먼지로 돌아가서는 이 세상 일을 마치 한 토막 꿈처럼 기억할 텐데.

 

(2022 6 19)

'신앙 공동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 종교와의 공존  (0) 2024.04.08
하늘나라의 시골장  (0) 2022.09.07
지난해에 세상을 떠난 교우들  (0) 2022.09.07
주님, 제 끝을 알려 주소서  (0) 2022.09.07
어른이 주면 그냥 받는 거야  (0) 2022.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