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공동체

지난해에 세상을 떠난 교우들

삼척감자 2022. 9. 7. 05:05

이사하고 나서 40년 가까이 다니던 성당을 떠났지만, 그 성당 신자들이 세상을 떠나면 소식을 전해 듣게 되고 때로는 장례 미사에 참례하기도 한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린 지난해에 세상을 떠난 분들이 여덟이나 되지만, 신기하게도 코로나로 세상을 떠난 분은 한 분도 없다.

 

돌아가신 분들의 향년과 사망 원인은 아래와 같다.

92(노환), 78(지병), 71(당뇨), 70(), 69(뇌졸중), 67(사고), 65(지병), 57().

100세 장수 시대라고 하는데, 대개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으니 안타깝다.

 

명절 때면 나에게 다디단 초콜릿을 선물로 주시던 S 할머니는 90을 넘겨 돌아가셨으니 그나마 장수하신 편이다. 몇 년 전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송사까지 걸어서 법원에서 받은 서류를 들고 오셔서 도움을 청하셨는데 도움이 못 되어서 지금도 죄송하다. 금전 문제야 재판에서 이긴들 채무자가 자발적으로 상환하기 전에는 대책이 없다고 말씀드리기는 했지만, 안타까웠다.

 

지병으로 돌아가신 P 선생은 성당의 오랜 교우였지만, 코로나로 집회 인원을 극소수로 제한할 때라 장례미사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평소라면 성당을 꽉 채울 정도로 많은 조문객이 몰렸을 텐데.

 

나와 동갑내기인 A는 당뇨로 오래 고생했다. 언젠가 휠체어를 탄 그를 한국 식품점에서 만났을 때 운동 좀 열심히 하라고 잔소리했었는데, 들을 척도 하지 않았다. 당뇨 관리를 열심히 해서 좀 더 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늘 책을 끼고 다니던 문학소녀 같은 모습의 M 자매는 몇 년 동안 암으로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병세가 호전과 악화를 되풀이하더니, 이 세상의 짐을 벗어 버리셨다. 더는 고통이 없다는 저세상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기원한다.

 

또 다른 M 자매는 몇 년 전에 나이 들어서 세례받은 분인데, 주일이면 맨 앞자리에서 미사에 참례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젊어서 신앙 생활하지 않은 걸 보충하려는 마음이었는지 성당의 행사에 열심히 참여하셨으니 하느님께서 어여삐 보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셨을 것 같다.

 

산책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V를 생각하면 테스 형 산다는 게 왜 이래?”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불경스럽지만, “스도 형 산다는 게 왜 이래요?”라고 물어보아야 하나? 몇 년 동안 암으로 투병했는데, 열심히 투병한 덕분에 나날이 호전되고 있어서 가족 모두 희망을 품고 있었는데, 어이없게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그녀와 가족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F가 오래전에 한국에서 유명한 포크 그룹 따로 또 같이의 멤버였다는 사실은 그의 부음을 전하는 한국 주요 일간지의 기사를 보고 알았다. 유튜브에서 찾아 들어 본 맴도는 얼굴’, ‘내 님의 사랑은’…등의 노래는 참 정감이 있었다. 가수의 끼를 숨기고 생업에 매달려 산 세월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생전에 그의 노래를 직접 들어 보지 못한 게 참 아쉽다. 

 

많지 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J를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 8년 전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더니 이번엔 그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살날이 두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고는 주님께서 이번엔 꼭 기적을 보여 주시기를 빌었다. 그런데 기적이란 건 없었다. 두 아들 결혼하는 거라도 보고 갔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데 기적이란 게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인생을 사는 방법에는 딱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적이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는데, 나보고 한 가지를 고르라고 한다면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걸 택하겠다.

 

새해 초에, 지난해에 세상을 떠난 분들을 기억하며 살아 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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