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베로니카 씨는 오랫동안 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활동도 열심히 한 신자이다. 수십 년 동안 성당에서 주일마다 얼굴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몇 년 동안 나와 함께 성당 일을 하며 수요일마다 회의를 마치면 삼겹살을 구워서 점심도 함께한 적도 많았기에 그녀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고는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저녁 산책길에서 범인을 뒤쫓으러 긴급 출동하던 경찰차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들으니 참 어이가 없었고, 기가 막혔다. 다른 차도 아니고 경찰차라니. 그리고 범인이 아니고 선량한 행인이 그런 사고를 당했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그녀는 몇 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정밀검사 과정에서 우연히 여러 군데의 암세포가 발견되고 나서 힘겨운 투병 생활을 시작하였다. 항암 치료를 받던 중 암세포가 전이된 것이 발견되어 어려운 수술도 받았지만, 강한 정신력으로 모두 잘 감당해 낸 덕분에 완치를 눈앞에 두고 있었는데 뜻밖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다니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교통사고란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단 한 순간에 인간을 망가뜨리니 정말 끔찍하다. 교통사고로 다리 하나를 잃고 오랫동안 고통을 겪고 있는 나는 그녀의 가족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성당에서 만날 때마다 밝은 웃음을 지으며 건강이 좋아지고 있다고 자랑했고, 올해 8월 초에는 “제가 오늘 할머니가 되었어요. 딸이 아들을 출산했어요. 기분이 정말 좋고 행복해요. 정말 좋아요. 오늘 종일 행복합니다.”라고 하더니, 한 달 전에는 “외손주가 넘 예뻐요. 두어 달 되었는데 웃으려고 하고, 입도 삐죽삐죽 옹알이하려고 해요.”라며 외손자와 사랑에 빠진 모습을 카톡으로 전해 주었는데 작별 인사도 없이 갑자기 떠났다는 얘기를 들으니 사람 좋은 그녀의 남편 요셉 씨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작년 여름 어느 날 주일 미사 후에 갑자기 초대받아 방문한 그녀의 집에서 요셉 씨가 손수 끓인 사철탕을 대접받으며 소주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그가 베로니카의 건강이 좋아지고 있어서 다행이라더니, “나, 저 사람 얼굴만 바라보며 살 수만 있어도 더 바랄 게 없겠어.”라고 말했다. 그랬던 그에게 무슨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하느님은 왜 그의 소박한 소망조차 들어 주시지 않았을까?
장례미사에 참례해서 관 앞에 세워둔 그녀의 영정 사진이 밝게 웃고 있는 걸 보니 가슴이 아렸다. 전능하신 주님께서 사람의 생사를 주관하신다는 말이 맞기는 할까?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왜 그녀를 하필이면 그렇게, 그때에 데려가셨을까? 하느님께 직접 따져보고 싶어도 그리 할 수는 없으니 누가 속 시원하게 대답 좀 해주면 좋으련만.
“주님, 제 끝을 알려 주소서. 제가 살 날이 얼마인지 알려 주소서. 그러면 저 자신이 얼마나 덧없는지 알게 되리이다.”(시편 39, 5)라는 성경 말씀처럼 제발 내가 세상을 떠날 때는 떠날 날을 미리 알려 주시면 좋겠다.
장례식 다음 날인 오늘은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데 이런 날에는 가수 못지않게 노래를 잘 부르는 요셉 씨가 즐겨 부르는 나훈아의 공(空)을 들으며 낮술이라도 한잔하면 헛헛한 마음이 달래질까?
살다 보면 알게 돼 일러 주지 않아도 / 너나 나나 모두다 어리석다는 것을
살다 보면 알게 돼 알면 웃음이 나지 / 우리모두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지
잠시 왔다 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 갈 세상 / 백 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
살다 보면 알게 돼 버린다는 의미를 /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1절)
(2020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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