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공동체

성당을 옮기다

삼척감자 2022. 9. 5. 01:56

‘조폭과 신부의 공통점’이라는 유머가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인기가 있다 보니 몇 가지 버전이 나오기도 했는데, 이제는 아재 개그의 고전이 된 것 같다. 그중 하나를 소개한다.

1. 검정 옷을 자주 입는다.

2. 식사하고 절대 자신이 계산하지 않는다.

3. 구역(나와바리)이 확실하다.

4. 아무에게나 반말한다.

 

물론 가톨릭 신부 대부분은 성직자의 본분에 맞게 겸손하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신부는 지나치게 권위를 내세우기에 위와 같은 유머가 유행한 듯하다. 그런 신부들은 제발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태 20, 28) 라는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을 늘 가슴에 담고 겸손하게 살면 좋겠다. 신부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는 신자가 있어서는 안 되니까.

 

조폭은 수입원이 되는 나와바리를 지키거나 다른 조폭 조직의 나와바리를 쟁취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패싸움도 불사한다. 이런 이야기는 ‘친구’를 비롯한 많은 영화에서 미화되어 철없는 청소년들이 조폭을 선망하는 웃지 못할 풍조도 만들었다.

 

그러나 가톨릭 신부들은 구역(나와바리)을 지키려고 목숨을 걸 필요가 없다. 평생 독신을 지키는 분들이라 수입을 늘리기 위해 남의 구역을 탐낼 필요도 없지만, 상부 조직(교구와 교황청)에서 알아서 구역을 정해 주고, 신자들은 반드시 자신이 사는 지역을 담당하는 성당에 등록하여 신앙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속지적(屬地的) 성당은 세속적인 행정 지방자치단체의 읍면동처럼 관할 구역 간의 경계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 오래전에 집 가까운 동네 성당에 미사 참례하러 갔는데 성당 입구에서 안내하던 분이 내 주소를 묻더니 그 성당 관할이 아니니 다음부터는 집에서 좀 떨어진 다른 성당에 가라고 권했다. 그만큼 가톨릭에서는 관할 구역을 엄격히 지키고 있다. 

 

한편 특정한 관할구역이 아니라 특수한 예법이나 정체성을 가진 신자들이 소속되는 속인적(屬人的) 성당도 있으니, 라틴어 미사를 거행하는 성당, 군인 성당, 미국의 경우 소수 민족 이민자 성당 등이 이에 해당한다. 미국에 있는 한인 신자들은 거주지역의 성당에 등록하지 않고 이민자 성당인 한인 성당에 등록할 수 있다. 물론 이민자 성당도 해당 지역의 교구에 소속되며 책임자인 주교의 지휘 감독을 받는다. 하지만 이민자 성당도 세월이 흘러 미국사회에 동화하여 고유 언어만 쓰는 신자가 감소하면 대개는 소멸되어 지역 성당에 흡수되는 과정을 거친다.  

 

나는 미국 남부의 소도시에 사는 3년 동안만 미국 성당에 적을 두었을 뿐, 35년 동안이나 뉴저지 동북부 지역에 있는 한인 성당에 적을 두고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2년 전에 뉴저지 중부지역으로 이사하고는 가까운 곳에 있는 한인 성당을 두고도 성당을 옮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35마일(56km)이나 되는 먼 거리였지만, 오랫동안 다니던 성당이라 주일 아침이면 습관적으로 그 성당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로 몇 달 동안 전 신자가 참례하는 미사가 불가능해지니 처음에는 좀 불안했지만, 몇 달 지나니 집에서 유튜브로 비대면 미사를 드리는 게 참 편했다. 그러고 이렇게 성당에 안 나가고도 지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 신앙심이라는 게 이처럼 보잘것없다.

 

이제 코로나바이러스의 세가 약해지니, 식당 등 업소의 실내 영업이 허용되고 종교 활동도 머지않아 정상화될 것 같으니까 그동안 편하게 지냈던 탓인지 생각이 흔들렸다.

가까운 성당을 두고 먼 거리에 있는 성당으로 굳이 가야 할까?”

속인적 성당이라 구역 개념이 없다지만, 가까운 곳에 한인 성당이 있다면 마땅히 그 성당에 등록하는 게 가톨릭 신자의 도리가 아닐까?”

그렇게 오래 생각한 끝에 가까운 한인 성당에 등록하니 오랜 숙제를 마친 것처럼 개운했다.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신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기에 가톨릭에서는 신자들에게 성당 선택권을 주지 않고 의무적으로 자기가 사는 지역을 담당하는 성당에 등록하도록 했을 거다.

 

(2020 10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