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공동체

기적을 기다리며

삼척감자 2022. 9. 3. 03:53

미루고 미루다가 말기 암으로 힘겹게 투병하고 있는 K의 집에 다녀왔다.  집에 돌아와 오래 전 그의 아내의 장례 미사에 참례하고 쓴 글이 생각나서 찾아 보았더니 그걸 쓴 날이  8년 전 바로 오늘(12 4)이었다. 그 글의 일부를 아래와 같이 옮겨 본다.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난 교우를 위한 장례미사에 참례하였을 때 아직도 어린 그녀의 두 아들을 보고 눈물이 나왔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나간 자리는 표가 난다는 옛말도 있는데 사랑하는 가족이 어디론가 떠나며 남긴 자리는 도대체 그 무엇으로 메울 수가 있을까? 그걸 몰라서 슬펐다. 그걸 몰라서 가슴이 아팠다.”

 

그 당시 열다섯과 열두 살이던 두 아들은 지금 스물세 살, 스무 살이 되어 큰아들은 직장에 다니고 작은아들은 대학교에 다닌다고 하니 그동안 아내 없이 자식을 반듯하게 키우느라 K의 고초가 오죽했을까? 그런데 그의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8년 후 그도 암으로 고생하고 있는 걸 보니 참 기가 막혔다. 하느님은 왜 그에게 이렇게 거듭해서 시련을 주시는 걸까? 성경의 욥기를 아무리 뒤적여 보아도 답이 없다. 정말 답을 찾을 수 없다.

 

암세포가 온몸으로 번졌지만, 병원에서는 달리 치료할 방법이 없어서 퇴원하고 집에서 고작 할 수 있는 게 진통제로 극심한 통증을 다스리는 것뿐이라니 그가 도대체 왜 그런 고통을 받아야 하나? 기력이 없어서 종일 침대에 누워서 시간을 보낸다는 그의 얼굴이 해맑아서 슬프고 안타까웠다. 

 

그가 점심을 마치는 걸 보고나서 우리가 일어나 작별 인사를 하니 성탄 미리 축하드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착잡했다. 우리 집에서 56마일(90km) 떨어진 먼 거리이니 자주 볼 수는 없고 내년 언제쯤 보게 되려나? 의사는 그의 남은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을 거라 했다지만, 돌팔이 의사가 뭘 알겠어? 그건 분명히 오진일 거야. 내년 이맘때에 성탄 축하와 새해 인사를 또 나눌 수 있을 거야. 하느님이 이런 소박한 소원도 안 들어 주실까? 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몰라서 슬펐다. 그걸 몰라서 답답했다.

 

그에게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바라며 집에 돌아 와서 인터넷으로 기적에 관해 검색하다가 아래와 같은 글을 보고 눈이 번쩍 띄었다.

 

말기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람 몇백 명, 몇천 명 중에 한 명은 갑자기 완치되는 경우가 있다. 전신에 암세포가 퍼져 다 죽어가던 면역계가 갑자기 미쳐 돌아가면서 암세포를 쳐죽이기 시작하는 것인데 왜 갑자기 면역계가 활성화하는지, 어떻게 해야 이걸 인위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지는 아직 연구가 부족해서 알 수 없다.”

 

그렇지. 기적이란 게 있기는 있다잖아. 인간의 의지가 강하면 확률따윈 문제 되지도 않을 거야. 그런 기적이 K에게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잖아. 그러니 K, 천국에서 기다릴 아내가 보고 싶더라도 마음 느긋하게 먹고, 힘들더라도 병을 잘 이겨내서 두 아들 결혼하고, 손자, 손녀 볼 때까지 오래 살게나. 기적이란 게 있기는 있다고 하니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2020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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