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할아버지,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삼척감자 2022. 9. 7. 05:24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대 유행이 시작된 지 벌써 일 년 반 정도 지났다. 그동안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작은딸 집은 물론 자동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큰딸 집도 방문하지 못 하다가 지난 주 토요일에 일 년 하고도 두어 달 만에 방문했다. 그동안 두어 차례 정도 딸네 집 근처 공원에서 잠깐 본 적도 있었고, 매주 한 번 정도 화상 통화로 얼굴을 잊지 않을 정도로 외손녀와 외손자를 보기는 했지만, 집 안에 들어가서 그들과 여러 시간 함께 지내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고 확진률과 사망율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우리 부부와 큰딸 내외도 백신 접종을 마쳤기에 둘째 외손녀의 생일을 맞아 드디어 큰딸 집을 방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낯설었던지 열 살 된 외손녀와 일곱 살 된 외손자는 좀 떨어진 소파에 앉아서 책에 코를 박고는 가끔 우리를 흘끔거리며 쳐다보았고, 화상 통화로 온갖 재롱을 떨던, 두 번째 생일을 맞은 작은 외손녀는 내 얼굴을 말없이 오랫동안 빤히 쳐다보았다. 가까이서 직접 대하는 노인이 아무래도 낯선가 보았다.

 

한참 지나서 부엌에서 식탁으로 음식을 나르던 열 살 된 큰 외손녀가 내 맞은편 자리에 앉더니 생글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어릴 적 생글거리던 큰딸과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며 나도 미소 짓는데, 그 아이가 물었다.

"How have you been, 할아버지?” (“할아버지 어떻게 지내셨어요?”)

“Good!” (“잘 지냈어!”)라고 내가 짧게 대답하고는,

“You look beautiful on your new dress.” (“새 드레스를 입으니 예쁘구나.”)라고 했더니,

“Thank you.”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외손녀가 참 사랑스러웠다.

 

큰 외손녀는 연방 생글거리며 두 살 된 막냇동생이 말하는 게 많이 늘었다며, 한국어 오빠는 제대로 발음하는데 언니라는 단어는 아직도 서툴어서 나니라고 발음한다며 웃었다. 그러고는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사촌(작은딸의 아들)과 통화한 얘기, 화상 통화로 본 새로 이사한 그 아이네 집에 수영장이 있더라는 얘기 등을 쉴 새 없이 종알거리며 멋대가리 없는 할아버지와의 대화를 이어 나가려 애썼다. 만나지 못 한 사이에 훌쩍 큰 키에 더해 할아버지를 배려해 주는 마음마저그 사이에 몸과 마음이 많이 자란 게 느껴졌다.  

 

"How have you been?”은 대개 오랜만(보통 한 주 이상)에 만난 사람에게 그간의 안부를 묻는 평범한 인사말이다. 물론 이런 경우에 “How are you?”라고 말해도 되지만, 두 가지 표현에는 조금 차이가 있다.

첫째로, “How have you been?”이이라는 표현은 전에 만난 적이 있는 사람에게만 쓴다.

둘째로, 얼마 동안(일주일 또는 그 이상) 만나지 못 한 사람에게만 쓴다.

그러니까 처음 만난 사람 또는 어저께 만난 사람을 오늘 또 만나서 이런 질문을 하는 건 매우 어색할 수밖에 없다. 이 질문은 마지막으로 만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큰사위의 새 직장 때문에 자동차로 여덟 시간 걸리는 먼 거리로 이사할 준비를 하는 큰딸네 가족을 만나고 돌아오며 이제는 How have you been?”이라는 인사도 아주 가끔씩 들을 수 있으려니 생각하니 서운했다.

 

(2021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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