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할아버지는 외계인

삼척감자 2022. 9. 7. 05:26

회사 후배 K 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퍼온 글 ‘은퇴 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재미있게 읽으며 글의 내용에 공감했다. 특히, “손자가 좋아 죽겠다고 카톡 프로필까지 손주 사진으로 도배를 해 놓고 할아버지가 외계인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일곱 살 될 때까지 보육원장 놀이하기”라는 대목에서 크게 웃었다.

 

한국 나이로 일곱 살이면 만 여섯 살이 되겠다. 지나고 보니 우리 큰 외손녀도 그랬다. 태어나고 얼마 동안은 낯가림이 심해서 우리 부부의 얼굴을 보면 삐쭉거리며 울었다. 좀 지나니 오랜만에 우리 부부를 만나면 반갑다는 듯이 방긋거려서 먼 길 달려온 보람을 느끼게 했다. 말하기를 시작하고는 우리가 가면 온몸으로 반가움을 드러냈다. 세 살 좀 지나서는 우리가 떠날 때는 다리를 잡고는 가지 말라고 매달려서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너덧 살 되어서는 “할머니, dont leave. Stay with me forever.라고 말하며 우리를 가로막아서 난처하기도 했지만, 행복했다. 그러던 아이가 여섯 살 즈음부터는 우리가 방문해도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동생과 놀기에 바빠졌다. 열 살이 지난 지금은 생각나면 깍듯이 인사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보던 책에 코를 박고는 우리를 본체만체 해서 서운하다.

 

아이들과 화상 통화할 때마다 큰아이들은 대개 ‘Hello’ 딱 한 마디하고는 바로 보던 책에 코를 박거나 화면에서 사라지고 두 살짜리 막내 외손녀만 혼자 남아 재롱떠느라 바쁘다. 하지만 그 아이도 몇 년 지나면 화면에서 사라질 것이다. 둘째 외손자(작은딸의 외동아들)와 화상 통화는 항상 그 아이가 식사하며  먹고 있는 음식에 관한 얘기를 나누는 것으로 한다. 안 그러면 한 자리에 잡아둘 수가 없어서 그렇게 한다는데, 그래도 먹는 모습이라도 보여주며 음식 얘기라도 나누는 게 어딘가. 하기야 그 나이에 할아버지나 할머니 얼굴 쳐다보는 것보다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외손자들(큰딸과 작은딸의 아들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여섯 살 즈음이 되어 우리 부부를 표정 없이 바라보면 외계인 취급 당하는 것 같아서 서운했다. 이게 다 아이들과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거니 싶어서 나이 들어도 당최 늘지 않는 우리의 영어 실력을 탓했다. 그런데 퍼온 글의 내용을 보니 한국에 사는 손주도 나이가 좀 들면 할아버지를 외계인으로 본다고 하니 적지 않게 위안이 되었다. 그럼 그렇지. 이게 우리의 영어 실력 탓이 아니고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렷다.     

 

우리 가족만 그런 게 아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보면 달려와서 안기고, 엉덩이를 흔들며 재롱떨며 노래한다고 만날 때마다 자랑하던 이들도 몇 년 지나면 아이들 얘기는 쏙 들어간다. 그게 외계인 반열에 들어간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어릴 적에 어쩌다 할아버지를 만나면 체머리를 흔들며 얼굴을 찌푸리는 모습이 낯설어서 큰절을 올린 다음 물어보는 말에 대답하고는 얼른 내뺄 궁리만 했고, 목 밑 주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할머니와 함께 식사하기를 꺼렸으니 내게는 그분들이 외계인으로 보였던 셈이다.

 

아이들 눈에 할아버지가 외계인으로 보이는 건 영어 탓이 아니다. 미래라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그들과 과거에 머물러 있는 할아버지가 지내는 세상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과거라는 세상에서 온 외계인이 맞는 셈이다.

 

(2021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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