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코로나바이러스 시국의 반보기

삼척감자 2022. 9. 7. 05:14

조선 시대에는 시집간 딸은 출가외인이라 했을 정도로 평상시 친정과의 교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농번기를 벗어나는 추석 무렵이 되면 하루 정도 짬을 내어 외출하는 것이 묵인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룻밤 묵는 것은 용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거리가 경우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반보기로 보인다. 약속한 날짜에 양쪽 집의 중간 지점에서 만나 회포를 풀고 그날 돌아오는 당일치기의 만남이었다. (한국 민속대백과사전)

 

그 시절의 노랫말이 '반보기 구전민요'로 전해지고 있는데 내용이 참 애절하다. 그중 일부만 아래와 같이 인용해 본다.

'하도하도 보고저워 반보기를 허락받아/ 이 몸이 절반가고 어메가 절반 오시어/ 새 중간의 복바위에서 눈물콧물 다 흘리며/ 엄마엄마 울엄마야, 날 보내고 어이 살았노.'

 

얼마 전 필라델피아에 사는 큰딸에게 외손자와 외손녀 알현을 허락받고 나니 반보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조선도 아닌 미국에서 그놈의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큰딸 가족을 일곱 달이나 만나지 못했다. 영상통화로 매주 한두 차례 사랑스러운 외손들을 보기는 했지만, 그걸 직접 보는 것에 비할까?

 

코로나바이러스가 좀 진정되며 아내는 큰딸에게 몇 차례나 아이들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졸랐지만, 큰딸이나 큰사위 모두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성격이라서 매번 허락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간청에 딸이 마지못해 허락했는데 그 조건이 참 까다로웠다. 집 근처 공원에서 만나되,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하고, 아이들을 만지지는 말아야 하며, 만나는 시간은 길지 않아야 한다는 거였다. 그래도 오랜만에 아이들 얼굴이라도 볼 수 있다는 게 감지덕지해서 그 조건에 토를 달지 못했다.

 

만나기로 한 곳은 큰딸 집 근처의 어린이 놀이터였다. 아내는 아침 일찍 일어나 김밥을 준비하고, 딸이 좋아하는 반찬 몇 가지를 챙기고, 나는 막내 외손녀 주려고 석 달 전에 사둔 책 몇 권을 챙겼다. 약속 장소인 어린이 놀이터에 도착하자 얼마 안 되어 마스크를 쓴 딸 가족이 입구에 들어오는 게 보였다. 몇 달 사이에 훌쩍 커버린 열 살 된 큰 외손녀와 일곱 살 된 외손자는 오랜만에 만난 마스크를 걸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낯선지 자전거로 빙빙 돌 뿐 인사할 생각조차 잊은 듯했다. 몇 달 전에 첫돌을 지난 둘째 외손녀는 우리 모습이 무서운지 얼굴을 쳐다보다가 외면하고, 또 쳐다보다가 외면하기를 되풀이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나니, 사위가 놀이터에 사람들이 자꾸 모여들고 있어서 불안하니 그만 가야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갖고 간 물건을 건네주고 돌아서는데 참 허전했다. 겨우 한 시간 정도 얼굴만 보고 돌아서니 이건 조선 시대의 반보기보다 나을 게 없었다.  

 

코로나 시국에 손자와 손녀를 만나는 방법도 갖가지다.

1. 집에 찾아가기는 하지만, 들어가지는 못하고 유리창을 통해 얼굴을 보고 손만 흔든다.

2. 집 뜰에서 노는 아이들을 응접실 창을 통해 구경만 한다.

3. 아예 아이들은 구경도 하지 못하고 집 문 앞에 가져간 물건만 놓고 온다.

4. 모두 포기하고 영상 통화로 만족한다..

5. 드물게는 가족이 가까운 곳에 살아서 가끔 만나 아이들과 식사도 함께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부럽기 짝이 없다. 그리고 코로나바이러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이 참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언제쯤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사랑하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 함께 대화하고, 음식을 나누고, 딸 내외와 술을 함께 마시던 평범한 일상이 그립다.

 

(2020 9 18) 

'가족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할아버지는 외계인  (0) 2022.09.07
할아버지,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0) 2022.09.07
유언장을 작성하다  (0) 2022.09.06
오래된 레시피  (0) 2022.09.06
딸들 생일에 즈음하여  (0) 2022.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