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아내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요리란 걸 한다. 오래 전 라면 끓이기에서 시작한 요리가 고급 요리로 발전했으면 아내에게 입 호강이란 걸 시켜 줄 수도 있으련만, 내 요리 실력은 만들기 쉬운 짜장면이나 링귀니(이탈리아 국수 요리)에서 그쳤으니 아쉽다. 그것도 재료를 준비해 두고 척척 만들면 아내 보기에 불안하지 않겠지만, 그때마다 서류함에서 레시피를 꺼내서 일일이 들여다보아야 하는 어설픈 요리사이다.
이번에도 링귀니가 생각나서 레시피를 꺼내다 그것과 함께 잘 모셔 둔 큰딸의 메모를 보고 울컥했다. 링귀니 요리를 만들 때마다 보게 되는 메모이지만, 볼 때마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 또박또박 한글로 쓰여진 메모는 날짜부터 시작된다.
2006년 9월 27일
“사랑하는 아빠에게,
이 레시피 생각나지요?
아빠가 입원 중일 때 엄마가 이삿짐 싸는 걸 돕다가 눈에 띈 걸 내가 챙겨서 갖고 있었어요.
다시 아빠에게 보내니 언제 또 한 번 음식을 만들어 보세요. 큰딸”
2006년이면 큰딸이 스물일곱 되던 해였으니 결혼한 지 3년 지나서 Law School을 졸업하고 로 클럭(Law Clerk)으로 법원에서 근무할 때였고, 나는 쉰일곱살이었는데 교통사고로 장기간 입원했다가 퇴원하여 휠체어의 의지하여 생활하며 막막해할 때였다.
큰딸이 이 메모를 쓰기 일 년 전, 그러니까 딸 내외가 우리 이사 준비를 도울 때 나는 교통사고로 서너 달째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다리 하나를 절단하고, 목소리를 잃고, 음식이라고는 물 한 모금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하는 상태로 병상에 누워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을 때였다. 때마침 전에 살던 아파트의 계약이 끝날 때가 되었는데, 딸 내외와 아내가 다리 하나를 잃은 나를 위해 계단을 오르내리는 아파트보다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가 나을 거라 생각하여 계약 연장보다는 이사를 결정한 것이었다.
이삿짐을 싸다가 내가 잡지에서 스크랩해 둔 영문 레시피를 본 딸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되었다. 아빠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지, 다시 걸을 수 있게 될지, 앞으로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을지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서툰 솜씨로 딸들에게 조갯살을 넣은 이탈리아 국수 요리를 해 주던 아빠의 모습을 그리며 이 레시피를 챙겼을 큰딸의 모습을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그리고 일 년이 지나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걷는 연습을 하며 재활 훈련을 하는 나를 보고 큰딸도 다시 희망을 품게 된 듯싶다. “아빠, 이제 다시 요리도 해 보며 열심히 사세요.”라는 뜻으로 이 레시피를 보내며 격려했으니 말이다.
사고 후 여러 달이 지나니 몸이 망가진 슬픔보다는 알 수 없는 기쁨이 솟구친 게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하다. 그게 성령의 도우심이거니 여겼는데 딸의 메모를 보니 그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가족의 사랑과 고마운 분들의 기도에도 힘입어 기쁜 마음으로 어려움을 이겨냈거니 생각한다.
사실은 링귀니(가느다란 이탈리아식 국수)에 조갯살을 넣은 요리는 내가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요리 중 하나이다. 딸들이 대학생일 때 방학을 맞아 집에 오면 서툰 솜씨로 만들어 식탁에 올리고는 식당에서 사 먹는 것보다 내가 직접 만든 게 더 맛있다고 우리 가족에게 자랑하곤 했다. 이번에도 레시피를 챙기다가 그 메모를 보며 이제는 마흔한 살, 서른아홉 살 된 두 딸을 떠올렸다. 맛있는 음식 먹으며 울컥해 지면 안 되니 이번에는 와인부터 먼저 마시고 식사를 해야 하겠다.
(2020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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