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동방 박사의 선물

삼척감자 2023. 2. 2. 09:21

동방 박사의 선물(The Gift of the Magi)’은 오 헨리가 1905년에 발표한 단편 소설이다.

유명한 소설이라 줄거리와 결말은 잘 알려졌지만,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임스 딜링햄 부부에게 사람 모두 대단히 자랑스러워하는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남편 (=제임스의 약칭) 할아버지와 아버지로 이어지며 물려받은 금시계였고, 다른 하나는 아내 델라의 길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이었습니다.”

   그런데 귀중한 금시계에는 시곗줄 대신 낡은 가죽끈이 묶여 있어서 남편은 시계를 꺼낼 때마다 부끄러워했다. 아내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손질할 때 쓸 고급 빗 세트를 갖고 싶어 했다. 가난한 그들은 크리스마스에 서로에게 줄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남편은 금시계를 팔았고, 아내는  머리카락을 잘라서 팔았다. 남편은 아내가 오랫동안 갖고 싶어 한 거북의 등껍질과 가장자리가 보석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빗 세트를 샀고, 아내는 남편에게 검소하면서도 품격 있는 백금 시곗줄을 샀다.

 

어릴 적에 이 소설을 읽고는 선물 마련을 위해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포기한 이들 부부의 이야기를 읽고 마음이 참 아렸다. 잘린 머리카락이야 다시 자라겠지만, 팔린 소중한 금시계는 어쩐다? 시계 없는 시곗줄이 무슨 소용이 있담. 선물을 마련하기 전에 상의했더라면 좋았을걸. 하기야 받을 선물이 무언지 미리 알고 기다리면 셀렘이 없겠지.

 

이 소설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똑똑 요즘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마지막 당부는 이렇습니다. 이들 사람이야말로 이제껏 선물을 주어본 모든 이들 가운데서도 가장 현명한 사람들이라고. 나아가 선물을 주고받은 적이 있는 모든 이들 중에서도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이라고. 세상 어디에서도 가장 현명한 사람,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동방박사들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동방박사들이 바친 예물에 관한 구절은 이렇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마태 2, 11)

 

동방박사들이 바친 황금, 유향, 몰약은예수님께서 참 하느님이시자 참 사람이시며, 하늘과 땅의 왕이심을 의미한다. 이들이 바친 선물은 영적인 상징으로 큰 의미가 있지만, 실용적으로도 성 가족에게 큰 쓸모가 있었을 것이다. 우선 황금은 경제적인 걱정을 덜어주어 성 가족, 특히 가장인 요셉에게 힘을 줄 것이고, 유향은 아기 예수의 위생 관리에 도움을 줄 것이며, 몰약은 산모인 마리아의 구급약으로 요긴하게 사용될 테니 동방박사들은 성 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선물을 바친 셈이다.

 

나는 동방박사의 예물처럼 완벽한 선물을 준비한 적이 있었을까?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경조금으로 약간의 현금을 보낸 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몇 번 되지 않았지만,  그마저 송금 절차가 번거로워서 꽃으로 퉁친 적도 몇 번 있었는데, 그게 인사를 차리는 것이긴 했어도 정을 나타내기에는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나도 꽃을 선물로 받으면 차라리 그 돈으로 와인이나 보내주면 좋았을 걸이라고 생각하며 아쉬워하고, 현금을 선물로 받으면 필요한 물건을 살 때 보탤 수 있어서 편하고 좋기는 하지만, 물건을 선물로 받아서 포장을 뜯을 때의 설렘을 느낄 수 없었으니 한국에 있는 가족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도 외국으로 물건을 보낼 때의 경비와 운송에 따르는 번거로움을 생각하면 현금이 편리하기는 하다.

 

두 딸과, 두 사위, 외손자 둘과 외손녀 둘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그들에게 적당한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게 쉽지 않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나이와 성별에 맞는 장난감 목록에서 고르면 되니까 선물 고르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한 살, 두 살 나이 먹어 가니까, 장남감보다는 학습 교재와 책 등으로 범위가 넓어지니 선물 고르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기껏 아이들에게 고른 선물이 아이 엄마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문제가 생기곤 했다.   

 

두어 해 전까지는 수많은 레고블록 중에서 한 가지를 골라서 보내면 무난한 선물이었던 게 과학 공작품이나 책으로 선택 범위가 넓어지니 선물 고르기가 머리 아픈 작업이 되어 버렸다. 얼마 전 큰 외손녀에게 영문 소설 King Sejong을 보냈다가 큰딸에게 핀잔받았다. 큰딸이 책 내용이 외손녀에게 적절한지 점검하려고 책 앞부분을 읽어보았더니 세종 임금이 동침할 여인을 선택하는 얘기가 나오기에 책을 치워두었다고 했다. 나중에 나올 한글 창제에 관한 얘기가 유익하기는 하겠지만, 어쩐지 찜찜하다는 게 큰딸의 생각이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는 아예 선물 목록을 딸들에게 미리 보내서 선택하게 하거나 아니면 받고 싶은 선물 목록(=Wish List)을 받아보기도 한다. 나이 든 아이들에게는 편하다는 이유로 도서 상품권을 보내거나 현금을 보내는 걸로 바뀌었지만, 아무래도 선물을 고르는 재미도 없어지고 아이들의 설렘도 줄어든 것 같아서 서운하다.

 

아무래도 나는 완벽한 선물을 골라 줄 동방박사라는 도우미가 필요한가 보다.

 

(2023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