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성당 신자인 S 형님은 80대 초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일주일에 한두 차례 정도는 골프를 즐기신다. 며칠 전 저녁 그분에게서 전화를 받았는데 목소리가 잔뜩 들떠 있었다. 그날 오후 4시 반, 같은 성당에 나가는 교우들과 함께 함께 동네(Neptune, New Jersey) 골프장(Shark River GC)에서 골프를 즐기다가 14번 홀(175 야드)에서 홀인원을 했다는 전화였다. 몸과 마음이 아직 젊어서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사람들과도 잘 어울려서 당구와 골프를 즐기며 나이보다 훨씬 젊게 사시더니 드디어 일을 냈구나 싶었다. 그래도 파3치고는 긴 거리에서 홀인원을 한 건 대단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 번의 샷으로 골프공을 홀컵에 집어넣는 것을 홀인원이라고 한다. 홀인원을 할 확률은 아마추어 골퍼의 경우 약 1/12000이며, 싱글 핸디는 1/5000이고, 프로 골퍼도 1/3500이라고 분석된 결과가 나와 있다. 사실 홀인원은 실력보다는 운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초보 골퍼도 얼마든지 도전해 볼 수 있다고는 하나 아무나 쉽게 그런 행운을 잡는 건 아니다. 그분은 오랜 세월 꾸준히 쌓아온 구력에 더하여 바다의 신, 넵튠이 바닷바람으로 공을 살짝 밀어주어 부족한 비거리를 늘려 준 덕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아마추어 골퍼라면 평생 한 번 기록할까 말까 할 정도이기에, 홀인원을 기록하면 한국에서는 한턱 쏘는 게 관례이며 기념패를 만들어 축하해 주는 골프 클럽도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이 '홀인원 턱'이란 게 너무 과도해져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홀인원을 했지만, 그날 함께 골프를 즐긴 사람들에게 입단속 시키며 소문내지 않는 골퍼도 있다고 한다.
홀인원을 할 때 골퍼가 티를 떠난 공이 날아서 직통으로 홀컵에 들어가는 걸 볼 확률은 지극히 드물 것이다. 대개는 홀컵 부근에 떨어진 공이 굴러서 들어가게 되는데 그게 멀어서 잘 보이지 않으니 그 근방에서 공을 찾아 헤매다가 나중에 다른 골퍼가 퍼팅을 마친 후 홀 컵에서 공 두 개를 한꺼번에 발견하게 되면 비로소 홀인원을 한 걸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수십 년 전 앨라배마주 어느 시골 마을의 골프장에서 나도 하마터면 홀인원이란 걸 할 뻔했다. 어느 가을날, 회사 동료 두 명과 함께 낙엽이 군데군데 떨어진 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기던 중, 홀컵에서 150야드가 채 못 되게 떨어 진 티에서 샷을 날렸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동료들이 “어, 들어간다. 들어간다.”라고 소리 지르기에 보니 공이 홀컵을 향해 천천히 굴러가는 게 분명히 홀인원이었다. “이런 변이 있나!”라고 나도 장단을 맞추며 바라보았더니 공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구르더니 야속하게도 홀컵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쳐서 1야드 정도 떨어진 곳에서 멈추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래도 침착하게 공을 밀었더라면 생애 처음으로 버디를 했을 텐데, 팔이 떨려서 허둥대다가 파도 못 하고, 보기에 그쳤으니 두고두고 애석하다.
이런 체험을 얘기하는 건 낚시꾼들이 고기를 놓치고는 이따만한 대어를 놓쳤다고 뻥을 치는 심리와 비슷하지만, 내가 새삼 옛날얘기를 꺼내는 건 노익장을 과시한 S형님이 부럽기 때문이며, 교통사고 후 생긴 장애 때문에 일찌거니 골프를 접은 게 아쉽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로 다리 하나를 절단당하고 골프에서 손을 뗀 지도 어언 20년이 다 되어 간다. 이제 홀인원은 물론 골프를 다시 즐기는 것도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 버렸으니 슬프다. 교통사고란 걸 당하지 않고 그동안 골프를 계속 즐겼다고 하더라도 내가 홀인원을 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홀인원은 뭐 아무나 하나?
S 형님,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앞으로 홀인원을 아홉 번만 더해서 열 번은 채워야지요.
(2021년 1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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