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나의 이웃 스캇(Scott)

삼척감자 2022. 9. 24. 21:00

아침에 일어나 블라인드를 열고 창밖을 내다보니 건너편 집에 사는 스캇(Scott, 74)과 리타(Rita, 84) 남매가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 일상적인 광경일 수는 있지만, 한 달쯤 전에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던 스캇을 보니 반가웠다. 산책길에 어쩌다 만나 누님의 안부를 물으면 20% 정도는 건강에 문제가 있지만, 80% 정도는 괜찮으니 그만하면 걱정할 일은 아니지 않느냐고 씩 웃고는 했다.

 

그는 만날 때마다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런 그에게 이제 담배를 끊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충고하면 들은 체하지 않더니 몇 달 전 어느 날 드디어 담배를 끊은 지 100일째 되는 날이라며 자랑하기에 부디 마음 바꾸지 말라고 잔소리했었다. 그 이후로는 그를 통 볼 수가 없었으니 그가 집 밖 벤치로 나와 앉은 건 오로지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였던가 보았다.

 

한 달쯤 전 어느 날 아침에 아내가 보니 집 앞에 구급대원(911 요원) 여러 명이 동원되어 스캇을 들것에 실어 나르더라고 했다. 다행히 머리를 움직이는 걸로 보아 위독해 보이지는 않더라고 해서 다행스러워했다. 그러고 한참 그를 보지 못했다. 누님인 리타는 집 안에서만 지내니 만날 수 없고, 일부러 찾아가 물어볼 수도 없어서 그냥 별일 없기를 바라기만 했지만, 오랫동안 보이지 않으니 조금 걱정은 되었다.

 

대엿새 전 날 아침 산책길에서 보니까 빨간색 승용차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리타의 차였다. 스캇의 안부를 물으려고 서둘러 쫓아가다가 보니까 스캇이 장 봐온 식품이 담긴 종이 꾸러미 몇 개를 내리고 있었다. “ 잘 지냈느냐, 건강은 어떠냐?”고 물어보았더니 천식이 심해져서 숨쉬기에 문제가 생겨서  급히 응급실로 가서, 열이틀이나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에 입원했고, 멀리 캘리포니아주의 산디에고에 사는 아들도 다녀갔다.”고 하니 리타가 보기에 동생이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나 보았다. 그사이에 고생을 심하게 해서 그런지 나보다 겨우 한 살 더 많은데도 부쩍 늙고 초췌해 보였다. 멀쩡하던 사람도 병원에 입원해서 환자복을 입고 간호사의 잔소리를 하루 이틀만 들으면 환자가 되어버린다고 하는데 그는 진짜 환자로 입원했으니 오죽하랴. 그래도 회복하여 운전도 하고 식료품도 사러 다니며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왔으니 정말 다행이다.

 

지난 며칠 사이에 먼저 다니던 성당에서 알고 지내던 신자 세 분의 부음을 전해 들었다. 67, 54세 그리고 49, 다들 세상을 떠나기에는 많지 않은 나이다. 저세상 가는 데는 나이 순서가 없다고는 하지만, 지극히 건강했던 이들이 암으로 판정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는 걸 보면 산다는 게 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운동도 열심히 하며 섭생에도 신경 쓰고 영양제도 열심히 복용하던 사람이 많지 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가 하면, 늘 허리가 아프다, 소화가 안 된다, 가슴이 뛴다며 호소하며 식사도 조금씩밖에 못 하던 우리 어머니처럼 병약하던 분이 100세까지 사신 걸 보면 인간의 수명은 각자의 노력보다는 하늘의 뜻에 달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콘도 단지에 사는 중국인 할머니 세 분은 각각 96, 84, 84세로서 적지 않은 나이인데도 매우 건강해 보인다. 84세인 두 분은 아침마다 둘레길 열 바퀴(5km 정도)를 빠른 걸음으로 걷는 게 활기차 보이고, 96세인 할머니는 간병인과 나란히 천천히 둘레길을 산책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인다.

 

기온이 뚝 떨어져서 쌀쌀한 날씨지만, 둘레길을 걷다 보면 이 할머니들 말고도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나를 보면 언제나 팔을 벌리고 하늘을 쳐다보며 참 좋은 날씨지요?”라며 미소 짓는 케이(Kay)라는 할머니, 해병대 헌병 출신 할아버지 지그(Zyg), 가끔 자전거를 타고 휙휙 달리는 모델 출신 마리아, 개와 함께 산책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어 분, 자전거로 천천히 둘레길을 달리는 인도인 가족 등. 창밖을 내다보니 가끔 웃통을 벗고 일광욕을 즐기는 배불뚝이 할아버지가 두툼한 재킷을 걸치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보인다. 좀 추운 날씨지만 나도 두툼한 옷을 걸치고 산책하러 나서야겠다.

 

(2022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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