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바람은 왜 피워서

삼척감자 2022. 12. 11. 22:04

옆집에 사는 잭(Jack)이 당뇨로 인해 문제가 생겨서 여러 달 병원을 거쳐 재활원에 입원했다가 얼마 전에 퇴원했다. 몇 달 전에 엄지발가락을 잘랐다던데 이번에는 또 무슨 문제였을까? 그는 나보다 두 살 아래인 백인 남자인데 건강이 좋지 않아서 늘 안색이 창백하고 개를 끌고 걷는 게 힘겨워 보인다. 때로는 잭만큼이나 늙어 보이는 개가 어기적거리며 그를 끌고 가기도 한다. 나보다 두 살 많은 이웃 남자 스캇(Scott)도 가슴이 답답하고 심장에 문제가 있다며 얼마 전에 구급차로 응급실로 실려 갔다 오고 나서는 부쩍 늙어 보인다. 내 나이 또래의 노인들이 건강이 좋지 않다는 얘길 들으면 나도 심란해진다.

 

잭에게서 재활원 얘기를 들으니 교통사고 후 석 달 동안의 재활원 입원 중에 만난 한국인 부부가 생각났다. 오십 대 초, 중반으로 보이던 그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대부분의 재활원 입원 환자자 2인용 아니면 6인용 병실에 입원했는데 그 한국 여성은 열흘 정도 독실에 머문 걸 보면 경제적으로 제법 여유가 있나 보았다. 어쩌다 복도나 대기실에서 보면 그녀의 남편은 하루도 빠짐없이 온종일 재활원에 머무는 것 같았다. 그녀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입원했다고 해서 어쩌다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남편에게서 자세한 얘기는 듣지 못 했다.

 

그도 그렇게 지내는 게 무료했던지 복도에서 나를 만나면 성대가 망가져서 말을 할 수 없는 나를 상대로 말을 걸고는 했다. 큰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고 과시하며, 나이가 몇 살 더 많은 나에게 거드름을 부리는 듯한 말투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동족이라고 그의 아내가 퇴원하고 더는 그를 보지 못하게 되니 서운했다.

 

나도 석 달 후 재활원에서 퇴원하고, 한참 후에 친구 부부에게 재활원에서 만난 그 한국인 부부 얘기를 했더니 뜻밖에도 그들은 그 부부의 사연을 잘 알고 있었다. 좁은 한인 공동체에서 소문이 널리 퍼졌고, 지역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라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고는 하지만, 최대한 숨길 건 숨기고 옮기면 이렇다.

 

이런 얘기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흔하기는 하지만, 그가 함께 일하던 젊은 여직원과 바람을 피웠다고 한다. 교통사고는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부인이 고의로 일으켰다고 한다(자세한 내용은 생략). 그 사고로 몸이 상해 아내가 입원하자 남편은 아마도 죄책감으로 아내 곁을 떠나지 못 했나 보았다. 이 교통사고의 뒤처리를 하느라 그들 부부는 고생깨나 했을 거다. 그러기에 바람은 왜 피워서 그 고생을 했담. 그리고 사고는 왜 일부러 내어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담.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뒷감당이 복잡하기에 일부러 사고를 낼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녀는 감정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에 차 있었기에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을 거다. 감성적인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받은 자극과 변화에 대한 자신만의 이미지를 최대한 잘 표현하려고 노력하며 상대가 그에 대해 어떻게 느낄 그런 감정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에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

 

아이고, 이런저런 거 다 따지다 보면 나같이 소심한 사람은 바람이란 걸 못 피우겠네. 하기야 나이 일흔을 훌쩍 넘은 할아버지를 어떤 여성이 쳐다 보기나 하겠나? 너그러운 아내와 사는 남자도 부디 그런 생각일랑 하지 마시길. 평소에는 이성적으로 보이는 여성이라도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한순간에 감성적으로 바뀌어서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으니까.

 

(2022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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