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

안드레아야, 잘 가라

삼척감자 2024. 2. 17. 09:09

며칠 전 초등학교 때 친구인 미카엘에게서 천규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니,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는 어릴 적에 강천규라는 이름보다는 강 안드레아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 신앙심이 깊은 친구였다. 몇 년 전에 연락이 닿아 그간의 소식을 주고받던 어느날 손자가 할아버지 하고 부르면 가슴이 울컥해진다.”라고 이메일에 쓴 그의 말이 생각났다.

 

어릴 적에 성당에서 여성 전교회장으로 활동하던 어머니와 함께 성당 구내의 작은 집에 살던 그는 아버지가 한국동란 중에 납치되어 실종된 후 홀로 된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기에 늘 외로움을 탔나 보았다. 몇 년 전 내게 보낸 이메일에서 어릴 적에 바로 옆집에 살던 민 안드레아네 가족이 올망졸망한 아이들(8남매)로 시끌벅적하던 게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라던 그의 말이 생각난다.     

 

그와 나는 점잖게 말하면 죽마고우였다. 어려운 말 대신 쉬운 말로 표현하면 X알 친구였다. 어릴 적에는 논두렁이나 밭두렁에서 한 놈이 소변을 보려고 고추를 꺼내면 너도나도 덩달아 따라 하다가 소변 멀리 싸기, 높이 싸기 같은 내기도 하곤 했는데, 그러다가 자연스레 서로의 X알을 들여다보며 점이 있네, 없네 하면서 킬킬거렸다. 그래서 어릴 적에 각별히 가까이 지낸 친구를 가리켜 X알 친구라고 하는가 보다. 안드레아와 나는 바로 그런 친구 사이였다.

 

어릴 적 친구 중, 세상을 떠난 친구가 적지 않다. 내 기억 속에는 친구들이 아직도 열 살 전후의 개구쟁이들로 남아 있는데, 다들 이제는 늙어서 세상을 떠나는 친구도 있다. 그동안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나 보다. 고향을 떠난 지도 어언 60여 년이 훌쩍 지났으니, 친구들이 하나둘 순서도 없이 세상을 떠나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절간에 가끔 나가며 집에서도 ~장보살을 반복해서 외던 우리 어머니가 가톨릭에 입교하여 손에서 묵주를 놓지 않게 된 건 전쟁 통에 구호물자로 들여와 성당을 통해 배급되던 밀가루의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안드레아 어머니의 끈질긴 권유가 결정적이었다. 어머니를 시작으로 우리 6남매 중 한 명을 뺀 5남매가 성당에서 세례받았으니, 그분을 통해 받은 주님의 은혜가 크다. 20대 말에 세상을 떠난 친구 박근수도 그분을 통해 대세를 받았고, 많은 이가 그분을 통해 주님을 알게 되었으니, 안드레아도 어머니의 감화로 깊은 믿음을 간직하며 살다가 하느님 나라로 갔을 거로 확신한다. 친구 미카엘도 안드레아의 끈질긴 권유에 못 이겨서 환갑이 지난 나이에 세례를 받았다니 그의 전교 열정도 분명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내가 환갑 기념으로 15년 전에 고국을 찾았을 때 내 고향 삼척에 잠깐 들렀다. 어릴 적 친구들, 그중에서도 두 명의 안드레아를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금세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일정이 바쁘고 다들 고향을 떠났을 거라는 핑계를 나 자신에게 대었지만, 사실은 어릴 적에 잘 나가든 내가 장애인이 된 모습을 그들에게 불쑥 드러내는 게 썩 내키지 않아서였다. 그래도 좁은 바닥이라 수소문해 보면 고향을 지키고 있는 친구들 몇 명은 찾아낼 수 있었을 테지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고향을 떠나왔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여기저기 수소문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민 안드레아, 강 안드레아 그리고 미카엘 등 옛 친구들과 얼마 동안 연락을 주고받다가 뜸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강 안드레아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니 참 산다는 게 허무하다. 녀석, 내가 한국에 갈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고서 뭐가 그리 급하다가 서둘러 떠났는가?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그리운 어머니도 만나고, 얼굴도 보지 못하고 평생 그리워했을 아버지도 만나서 부디 외롭지 않게 지내게나.

 

(2024 2 16)

'시간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원국 선생님  (0) 2024.08.25
도둑일까 손님일까  (0) 2023.08.29
41년 전 오늘 밤  (1) 2022.12.11
특허 분쟁에 대처할 자료를 찾으러  (0) 2022.09.07
음치로 살아가기  (1) 2022.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