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이후

죽고 싶었다

삼척감자 2024. 9. 30. 11:11

잠에서 깨니 새벽 두 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잠들기 전에 인터넷 신문에서 본 유명한 야구 해설가였던 고등학교 동창생의 자살 속보가 떠올랐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자살을 택했겠나? 몇 년 전에 죽을 고비도 어렵게 넘겼다던데 이처럼 허망하게 가다니.

 

그리고 최근에 검진을 통해 몸에 종양이 발견되었다는 교우 두 분의 얼굴도 떠올랐다. 재검진, 수술, 치료 등의 힘든 과정을 거칠 그분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오랫동안 환자 노릇을 해 본 나는 그게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과정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오래 전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두 달이 지나 의식을 찾고 보니 병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하느님을 원망한 이가 나뿐이었을까? 밤에 병실에 혼자 있을 때는 왜 하필이면 내가 이런 사고를 당해야 했느냐?”고 주님을 수없이 원망했다.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면 나를 사고 나기 이전으로 되돌려 달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성대가 망가져서 목소리를 잃고 물 한 모금 삼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절망했다. 다시 먹고 마시고 말할 수 있게 될지, 그게 언제가 될지 확실하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는 죽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높은 건물 옥상에서 아래를 내래다 보며 뛰어내릴까 말까 망설이는 내 모습을 보았다. 환시였다. 뛰어내리려는 유혹에 빠지려는 순간에 정신이 돌아왔다. 병상에서 손가락 하나 움직일 기운도 없는 중환자가 일을 저지를 수는 없었지만, 죽으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유혹은 끈질겼다. 그리고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중환자가 잠을 이루지 못하니 심상치 않다고 여겼던지 심리상담전문가가 나를 찾았다. 말 못하는 나와 입술 움직임을 보며 얘기를 나누다가 이해할 수 없으면 공책과 펜을 내밀며 적으라고 했다. 어느 순간 불쑥 그녀가 물었다.

   혹시 자살을 생각하고 있나요?”

   정말 죽고 싶어요.”

그리고 두어 마디 더 나누고 나서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중얼거리며 그녀는 일어섰다. 그리고 며칠 동안 주사로 수면제를 놓으며 강제로 재우려 했지만, 수면제도 잘 듣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최악의 상태로 떨어지니 문병 와서 병실에 오래 머무르는 분들이 참 미웠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받아들이자. 그대로 받아들이자.”. 사고 전에 열 번도 더 읽은 욥기의 말씀이 떠오른 건 큰 은총이었다.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좋은 것을 받는다면, 나쁜 것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소?” ( 2,10) “그래, 좋은 것도 많이 받았는데, 나쁜 것도 받아들이자.” 그리고 다시는 주님을 원망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 모든 일을 당하고도 욥은 제 입술로 죄를 짓지 않았다.”( 2,10)는 말씀을 되새기며, ‘앞으로는 많이 웃고 다시 살아난 걸 기뻐하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마음먹자 문병 오는 분들이 반가워졌다.

 

가끔 웅얼웅얼, 웅성웅성, 와글와글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릴 적부터 환청으로 고생해왔기에 몸이 허약해지면 들리던 환청이거니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소리는 신경을 거슬리지 않고 마음이 편안하게 했다. 나를 위해 기도하는 분들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 그분들의 기도 소리가 들린다고 착각한 것 같았다. 아무튼, 나를 위해 기도한다는 분들이 많다는 얘기는 큰 힘을 주었다. “꼭 살아야지, 건강을 되찾아야지.”라고 다짐하며 더 많은 분들의 기도를 바라게 되었다.

 

기력이 없어서 기도를 바칠 수가 없었기에 머릿속으로 십자가의 길을 그려 보았다. 예수님과 성모님 그리고 십자가의 길을 걷는 다른 이들을 머릿속에 그리다가 때로는 나 자신이 십자가의 길을 걷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성모님을 직접 뵙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감히 예수님을 뵙기를 바랄 수 없었지만, 성모님은 마음 편히 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며칠 후 어느 날 새벽에 병상 발치에 안드레아 보첼리를 많이 닮은, 머리칼이 덥수룩한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왠지 슬퍼 보이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 남자의 실루엣은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보았는데 그의 표정이 밝아지며, 내 기력도 점차 회복되어갔다. ‘성모님은 안 찾아오시고 웬 엉뚱한 남자가…’라고 어이없어했지만, 아마 그는 내 수호천사였나 보다. 

 

이전에도 도막도막 쓴 글을 다시 이렇게 모아보는 건 내 주위의 편찮은 분들이 이 글을 읽고 용기를 얻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다. 환자의 체험이라는 게 다 비슷하겠지만, 그래도 신앙을 가진 이들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힘들어도 주님이 주신 걸 받아들이고, 열심히 주님을 찾고, 다른 이들의 기도를 청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다가 병에서 치유되어 히즈키야 왕처럼 보소서, 저의 쓰디쓴 쓰라림은 행복으로 바뀌었습니다. 당신께서는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게 제 목숨을 지켜 주셨습니다. (이사 38,17)” 라고 주님을 찬미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2016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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