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살던 동네 체육관에 운동하러 가면 지주 보던 흑인 청년은 나를 보면 함박 웃음을 지으며 반가워했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듬직한 체구의 백인 여자 간병인의 시중을 받으며 아주 기본적인 운동만 했다. 체육관에 처음 나올 때는 휠체어에 힘겹게 앉아있기만 했는데 1년 여가 지났어도 손을 흔드는 정도로 조금 호전되었을 뿐, 걷지 못하고 말을 못했다. 전동 휠체어에 달린 자판을 치면 컴퓨터에서 “How are you?” 정도의 간단한 인사말이 흘러나왔다. 나를 보고 반가워하는 건 일종의 동병상련일 것이다. 간병인을 통해 그와 통성명을 하고 몸이 불편한 정도를 서로 물어보았더니 약물 문제(마약인듯하다.)로 심장마비가 와서 그 후유증으로 전신마비가 되었다가 회복 중이라고 했다.
그렇게 몸이 부자유스러운데도 늘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띨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다. 그게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살아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라는 걸. 극도로 안 좋은 건강 상태에서도 해가 떠도 행복하고, 비가 와도 그렇고, 눈이 내려도 그렇고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행복한 느낌이 온몸을 감싸는 게 바로 밑바닥까지 떨어져 본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아닌가 싶다. 행복을 쉽게 느끼는 건 행복의 기준치가 아주 낮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 동네를 떠나기 몇 달 전부터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도 건강이 악화하여 운동하러 나올 수 없게 된 걸로 짐작할 뿐이다. 오늘 아침에 늘 미소를 짓던 배리라는 그 청년이 생각난다.
'교통사고 이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트레이너와 물리 치료사 (0) | 2025.03.10 |
---|---|
의족을 끼고 지내보니 (0) | 2025.02.07 |
그게 예지몽이었던가? (0) | 2025.01.30 |
살아보니 살아지더라 (1) | 2024.12.05 |
이 좋은 아침에 (2) | 2024.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