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서 목자(目子)가 불량(不良)하다”라는 표현을 가끔 볼 수 있다. 목자는 눈의 비속어로서 ‘눈깔’ 정도로 옮기면 되겠다. 젊은 나이에 서비스 과장으로 임명되어 대전에서 근무를 시작했는데 얼마 지내니 그야말로 ‘눈깔 굴리는 게 불량스러운’ 직원 둘이 눈에 거슬렸는데 둘 다 나보다 나이가 여러 살 위였다. 한 사람은 운전기사였는데 군대에 있을 때 장군의 차를 몰았다는 걸 대단한 자랑으로 여기며, 일도 없이 내 방에 들어와 여직원들에게 곱지 않은 말을 내뱉는 게 나에게 시위하는 것처럼 보였다. 또 다른 직원은 사무직원이었는데, 친형이 본사의 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걸 대단한 빽이라고 과시하며 센터장에게 반말을 내뱉으며 거칠게 굴었다. 센터장도 이 두 친구가 직원들을 선동하여 분위기를 흐려놓아 통솔이 어렵다고 하소연하였다. 이 두 놈을 어찌한다. 나이도 어린 책상물림이 “목자가 불량한 두 조폭 비스무리한 인간을 어쩐다?”
얼마 후에 이 두 인간이 정면으로 도전해 왔다. “과장님, 오늘 저녁에 술 한잔합시다.” 삐쩍 마른 애송이라고 우습게 알고 기를 꺾고자 하는 것 같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술이라면 나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에 술 한잔 같이하며 그들 얘기를 들어보자는 속셈에서 바로 응했다. “그럽시다”
퇴근 후 그들이 잘 안다는 술집에서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호기롭게 안주도 여러 가지 시키고 연방 두 사람이 번갈아 술을 권하는 대로 부지런히 마셨다. 그 친구들 한 잔에 나 두 잔, 이런 비율로 마신 것 같았는데 다들 무척 취했다. 맥주로 입가심하고 일어서는데 다들 발걸음이 휘청거렸다. 택시에서 내리니 땅바닥이 올라와 내 머리를 때리는 것 같았지만, 그럭저럭 집에 도착하여 바로 곯아떨어졌다. 그날 그들과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기억도 없다. 그저 술상에서 입으로 술잔을 나르느라 팔운동만 열심히 했다.
그다음날 일어나니 당연히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기운이 없었다. 그래도 내 사전에 결근은 없었다. 정상적으로 출근하니 목자가 불량한 두 인간은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그 전날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근처 여관에서 늦잠을 자고 점심시간이 지나서 출근했더라. 그날 이후로 나를 보는 그들의 목자가 한결 부드러워진 걸 느낄 수 있었고, “김 과장 술이 무척 세더라”는 존경심 어린 소문까지 퍼뜨려 주었다. 단순한 사람들에게는 술이 자신들보다 더 세다는 것도 존경할만한 일인가 보았다. 술이라도 잘 마신 게 그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그래도 센터장과의 불화는 풀리지 않아서 운전기사는 고향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본인의 희망을 받아들여서 멀리 순천 서비스센터로 전근시켰더니, 그곳 직원들의 텃세에 눌려 얌전해졌다고 하며, 다른 직원도 본인의 희망에 따라 영업 부서로 전보시켰더니 새 부서에서 일을 배우며 눈칫밥을 먹으며 지낸다고 했다. 제일 골치 아픈 직원들이 그렇게 떠나니 일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서비스 부서의 관리자는 웬만한 회사에서 하는 다양한 일을 거의 다 다룬다. 하지만 아무리 조직이 잘 짜여 있고 유능한 직원들이 많아도 결국 모든 건 사람 관리로 귀결된다. 사회 경험도 적고, 나이도 어렸던 내가 서비스 과장이라는 직무를 수행하기에는 능력이 많이 부족했다. 지금 그 자리를 다시 맡으면 잘해 낼 수 있겠지만, 일흔이 넘은 노인에게 그런 걸 맡길 회사는 없겠지?
(2021년 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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