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

서비스 과장 시절에

삼척감자 2022. 9. 4. 04:05

금성사에 입사한 지 4년 막 지나서, 서른 번째 생일을 몇 달 앞두고 승진이라는 걸 했다. 지금 기준으로는 조금 빠를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회사 조직이 급격히 확장할 때라서 채워야 할 자리에 비해 사람이 부족하여 전공이나 경력이 그 자리에 적절한지 별로 따지지 않았다. 그래서 특허 업무를 담당하던 책상물림이 지역 사령관 격인 서비스 과장에 임명되었다.

 

비교적 평화로운 서울 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지방으로 이삿짐을 싸서 내려가려니 좀 서글펐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촌구석(?) 대전에서 근무하려니 갑자기 변방으로 밀려난 듯해서 억울했다. 막연히 업무부와는 달리 분위가 거칠 거로 생각했지만, 관련 부서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두려움이 앞섰다.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 경기도 일부 그리고 강원도 일부까지 포함하는 넓은 지역의 서비스를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 현장에서 오랫동안 잔뼈가 굵은 나이 든 서비스 센터장들 그리고 80명 가까이 된다는 서비스맨들을 관리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통솔력도 부족하고 현장 경험도 없는 내가 그들에게 얕보이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당시 지방에 근무하던 관리자의 처우는 괜찮은 편이었다. 영업 부서의 영업소장(부장)과 연락소장(과장)에게는 사택과 승용차를 제공했고, 서비스 과장에게는 사택을  제공했다. 부동산 투자가 주목적이었을 수도 있었지만, 나도 덕분에 80여 평짜리 널찍한 사택을 받았다. 덤으로 사택에 설치된 전화 요금은 회사에서 부담했다.

 

처음 사무실에 출근한 날에 의자에 앉기가 망설여졌다. 과장용 의자가 등받이가 높고 팔걸이까지 있는 게 본사 중역실 의자보다 커서 분에 넘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과장실에는 소형 응접세트와 회의용 탁자도 있는 게 흡사 중역실 같았다. 지역 유지 행세를 하는 대리점 사장들을 대하는 과장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거라고는 했지만, 이런 사무실 비품이 신참 과장에게는 부담스러웠다.

 

서울에 있는 서비스부장과는 가끔 전화로 연락할 뿐 자주 만날 수 없기에 업무에 관한 결정은 대부분 직접 내려야 했다. 그것도 시간을 끌면 안 되는 일이 대부분이라서 얼마 전까지 일일이 과장의 지시를 받아 일하던 사람에게는 익숙하지 않았으나 곧 적응할 수 있었다.

 

내가 담당하던 중부 서비스과에는 대전, 청주, 충주, 광주, 전주, 순천 등 6개 서비스 센터가 소속되어 있었다. 처음 서비스 센터장 회의를 소집한 날 은근히 나를 얕보는 그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6명 중 5명이 나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40대 후반이 3, 정년을 앞둔 50세 센터장이 1명이었다. 공구 가방을 들고 각지를 헤맨 얘기를 하며 나이 서른을 앞둔 애송이 과장의 기를 누르려 했다.

 

상고 출신의 경리 담당 직원, 공고 출신의 전기와 전자 수리 기사, 대부분 중졸 이하의 학력을 가진 운전기사 등으로 구성된 직원들은 툭하면 툭탁거리며 싸우고는 시비를 가려달라고 했다. 언행이 거칠고 쌍소리를 거침없이 내뱉었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일하는 그들을 이해하려 애썼다.

 

틈나는 대로 지방 서비스 센터를 방문하여 업무를 점검하고 그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게 멀리 떨어진 각 서비스 센터를 관리하는 방법이거니 했다. 그들을 만나면 저녁에 소주라도 한잔 해야 하는데 늘 부족한 예산이 문제였다. 생각다 못해 잠은 허름한 여인숙에서 자며 아낀 출장비를 모아 대개는 값싼 안주 몇 가지 시켜 놓고 소주를 나누곤 했는데, 어쩌다 고기 안주라도 오르면 직원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시간 나는 대로 각 지역의 대리점을 방문하여 가능하면 사장님들의 요구 사항과 기사들의 고충을 들으려 애썼다. 늘 요구 사항은 많고 들어 줄 수 있는 건 적어서 죄송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다녔다. 재임 중 관내 대리점은 거의 한 번 이상은 다녀온 것 같다.

 

서비스 과장의 직무는 늘 고달팠다. 주일 근무는 당연했고, 여름 성수기에는 평일 11시 퇴근과 주말 9시 퇴근이 예사였지만, 수시로 터지는 인사 사고, 차량 사고, 자재 사고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다)는 감당하기 힘겨웠다. 젊었을 때니 그럭저럭 감내했지만, 나이 들어서는 해내기 어려운 직무였다.

 

지금과는 매우 다를,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를 꺼낸 까닭은 이런 기록도 남겨 놓아야 하겠다는 생각과 이런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을 배려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2021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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