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생일 때 구자경 회장을 처음 만났다. 내 나이 스무 살일 적에 제1회 연암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당시 막 회장에 취임한 40대 중반의 회장님을 다른 장학생들과 함께 만났다.
일개 대학생이 그분을 만난 연유는 이렇다
소년 가장으로 힘겹게 대학 생활을 하던 나를 눈여겨본 학과장님이 어느 날 사무실로 불러서 투박하게 타자된 용지 몇 장을 주시며 “너 금성사 장학생 한 번 신청해 봐라”라고 했는데, 누가 경상도 사람 아니랄까 봐 별다른 설명도 없이 생색내기도 없이 무뚝뚝한 그 한마디뿐이었다. 내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머뭇거리자 “빨리 가봐” 딱 그 말뿐이었다.
등록금과 생계비 마련을 위해 1년 내내 아르바이트에 밤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공부하러 학교에 다니는지, 돈 벌기 위해 학교에 다니는지 나도 헷갈리던 때였다. 나중에 연암 장학생 신청서를 꼼꼼히 살펴보니 고 연암 구인회 회장님의 유지를 받들어 설립한 장학회라고 소개되어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학비 전액을 지급하는 게 놀라웠다. 학비 전액 지급 장학금은 내 기억으로는 그 당시에 연암 장학금밖에 없었다. 등록금 명세서에 포함된 건 모두, 심지어는 교재비와 앨범 대금까지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지급하는 최고의 장학금이었다.
장학생에 선발되고 달포 정도 지난 어느 날 장학생들과 회장님과의 상견례가 있었다. 대학교 교무처에서 준비한 선물을 들고 락희그룹 본부를 방문했더니 다른 대학교 학생들도 와 있었다. 한국 굴지의 그룹 본부치고는 소박해 보이는 사무실이 인상적이었다. 비서실장(아니면 기획조정실장)이 회장님 소개를 하고, 모임의 취지를 설명하고 이어서 회장님의 인사 말씀이 있었다. 서두를 떼나 했는데, 학생들을 둘러보던 회장님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어느 학생을 가리켰다.
“학생, 철학과 다니시오?”
“아닙니다.”
“당장 머리부터 깎으소”
“그리고 학생들, 데모 좀 하지 마시오. 데모 때문에 경제 활동에 지장이 많소.”
그리고 회장님은 바로 퇴장하고 싸늘해진 분위기를 수습하느라 비서실장이 “회장님이 어버이 된 심정으로 말씀하신 거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비서실장의 주재로 수혜 소감, 건의 사항 등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런 이야기야 모두 뻔한 내용이니 기억에 남는 건 없었지만, 대그룹 회장님이 매우 소탈하고, 사무실이 생각보다 소박했다는 정도만 기억에 남는다. 그게 50여 년 전 일이다.
그게 계기가 되어 졸업 후 두 번 생각할 일 없이 금성사에 지원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가난했던 내가 학비 걱정 없이 무사히 대학을 마치게 해 준 연암장학회에 늘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그 은혜를 갚으려면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회사를 위해 근무했어야 했는데 내 능력 부족으로 그렇게 하지 못한 게 죄송스럽다. 그리고 장학회 설립 취지에 맞게 한국 과학 기술의 발전에 이바지하지 못하고 엉뚱한 분야에서 헤맨 것도 민망스러운 일이다. 미국에 산다는 핑계로 내가 장학생으로 선발될 수 있게 힘써 주신 학과장님을 찾아뵙지 못하는 것도 면목 없는 일이다. 내가 ‘의리 없는 인간’ 아니면 ‘먹튀’가 아닌가 싶어서 낯뜨겁다.
(2021년 8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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