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

감전사한 분의 가족을 만나본 체험

삼척감자 2022. 9. 2. 22:40

내가 중부 지역 서비스 과장을 할 당시의 지방 서비스 조직은 업무 및 직원 인사 관리는 서비스 과장이 맡되 직원의 근태 관리는 연락소장에게 위임하는 방식이었다. 중부 서비스과에 소속된 직원은 충청과 호남 지역 내 6개 연락소와 함께 있는 6개 서비스 센터에서 근무하는 70여 명이었는데 과장이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직원들을 자주 만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그런 관리 방식을 택한 것이다.

 

40년 전 어느 날, 본사의 서비스 부장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청주 지역에서 감전사한 분의 가족을 만나 경위를 조사하되 절대 회사에서 부당하게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유의하라는 긴급 지시였다. 바로 청주 연락소장에게 전화하여 간단한 사고 경위를 들었다. 어느 아주머니가 감전사했는데 유가족은 그분이 금성 텔레비젼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우기고 있다는 얘기였다. 소장과 연락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바로 출발했다. 미리 잡힌 약속에 따라 연락소장과 함께  파출소에서 담당 순경, 한전 직원 그리고 사망자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막무가내로 부인이 텔레비젼 옥외 안테나에 닿는 순간 아내가 감전되었으니 TV 제작회사인 금성사에 끝까지 책임을 물을 거라며 울먹였다.

-이미 현지 조사를 마친 한전 직원은 도면까지 그려가며 누전으로 인한 사고로서 사망자 가족의 과실로 보인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순경은 한전 직원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답답해하며 사망자의 남편을 설득했다. 이거 참, 법적인 문제라면 나도 자신 있는데, 전기라면 나도 잘 모르겠네. 얘기를 들어보니 한전 직원 말이 맞는 것도 같고, 당신 마누라가 운이 나빴던 것 같네. 기왕 장례식도 치렀으니 빨리 잊어버리소.

-연락소장과 나는 말을 아끼며 그들의 말을 듣기만 했다.

인명이 희생된 사고였고 남편 되는 사람이 계속 회사에서 책임지라고 요구하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서 모두 사고 현장에 가서 다시 확인해 보기로 했다.

 

그 집은 청주 시내를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시골 농가였다. 먼저 안방에 들어가 보니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그 집 아들이 무심히 TV를 보고 있었다. 물론 금성 TV였는데, 화면과 음향 모두 지극히 정상이었다. 얼핏 연락소장의 얼굴을 보니 안도의 기색이 역력했다. 이미 현지 조사한 한전 직원이 콘센트를 가리키며, 그집 아들이 드라이버로 그걸 쑤셔서 손상된 것이라 했다. 아이가 그걸 망가뜨린 순간 설거지한 물을 버리러 온 부인이 우연히(바람 또는 원인 불명) 전선에 닿은 안테나에 접촉하여 감전되었을 거라고 했다. 밖에 나가보니 평소에 허드렛물을 버리던 안테나 밑은 축축했다. 안테나 밑에 장기간 축적된 수분때문에  감전될 경우 대량의 전류가 흘러 치명적일 수 있다고 한전 직원이 설명했다.

 

사고 후 며칠이 지났는지라 현장 보존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정확한 원인도 모르겠고, 한전 직원의 말도 명쾌하지는 않았지만, TV 때문에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니 다행으로 여겼다. 7000V까지 관리할 수 있는 전기 주임 기술자 면허증이 있던 내가 보기에도 한전에 책임을 물을 일도 아닌 것으로 보였다.  

 

감전에 대한 흔한 오해로 높은 전압이 사람을 죽인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사람을 죽이는 역할은 전류가 한다. 바로 정전기가 그걸 증명해준다. 정전기의 전압은 1만V를 넘지만, 전류가 낮고 전류가 흐르는 시간도 매우 짧아 아무리 정전기를 느껴도 안 죽는다. 테이저 같은 비살상무기의 전압은 2~8만V에 달해 위험해 보이지만 정작 전류는 20mA도 안 되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 치명적인 전류치는 100mA 이상인데 200V 전압에서도 저항치가 20 이하로 낮으면 100mA이상의 전류가 흘러 감전될 경우 치명적이다.

 

그 이후 사망자 유가족이 회사에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아 그 사건은 바로 잊혀졌지만, 가끔 그집 아들 생각이 난다.  아버지에게 “이눔 자식 그걸 왜 쑤셔 가지고…”라며 야단 맞던 아이도 지금은 쉰 살 가까이 되었겠다. 아버지가 순박하고 선량해 보이던데, 그런 아버지 밑에서 엄마 없이도 잘 자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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