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

쓸데없이 돈을 쓰다니

삼척감자 2022. 9. 5. 02:03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이 미국에서 판매된 후 고장 나서 서비스 신청하기 까지 얼마 정도의 기간(이하 초기 고장 소요 기간이라 함)이 걸릴까? 궁금하기는 하지만, 크게 중요한 사항은 아니다. 제품 보증(Warranty) 기간을 정할 때 다소 참고할 수는 있겠지만, 업계의 동종 제품에 대한 관행을 기준으로 해서 회사 판매 정책에 따라 다소 늘리거나 줄이면 되지 초기 고장 소요 기간이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고장 발생 비율이나 서비스용 부품을 주문할 때도 초기 고장 소요 기간이 그다지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지는 않는다.

 

35년 전 뉴저지 현지 법인의 어느 분이 초기 고장 소요 기간에 관하여 묻기에 6개월이며, 산출 근거는 서비스 카드에 적힌 내용에 따라 샘플링해서 계산한 결과를 사사오입하면 6개월이라는 결과가 나오더라고 대답했다. 서비스 카드에 적인 제조 번호(Serial Number)와 고장 접수 일자를 Lotus 123(나중에 Excel로 진화됨)에 넣어서 계산하면 쉽게 산출되니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고 며칠 후 PMM(후에 KPMG로 통합됨)의 한국인 직원 한 명이 초기 고장 소요 기간 산출에 관해 질문했다. 어느 분의 지시를 받았다니 대답해 줄 수밖에 없었다. PMM은 미국에서 손꼽는 회계법인으로서 당시 현지 법인의 회계 보고 업무를 위임받았고, 가끔 자문에 응하기도 하는 회사라서 그 회사의 한국 담당 부서 직원들과는 낯이 익었지만, 나 같은 동네북(서비스 담당)이 그들과 업무 얘기를 나누기는 처음이었다. 내 대답을 듣더니 서비스 카드 300장의 사본을 요구하기에 내어 주었다.

 

이틀인가 사흘이 지나서 그들이 회사를 방문해서 두 장짜리 영문 보고서를 내밀었다. 지시한 분에게는 이미 보고서를 드리고 내게는 사본을 주는 거라 했다. 제목은 초기 고장 소요 기간’, 산출 방식은 위에서 설명한 내용을 영문으로 옮긴 거에 불과했고, 결론은 5.5개월. 제기랄 같은 내용을 영문으로 쓰면 더 그럴싸한가? 그리고 5.5개월이나, 6개월이나 무슨 상관이람. “완전 쇼하고 자X졌네!”라는 욕이 나올 뻔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시한 분이 역시 전문가들이 과학적으로 분석하니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라며 만족할 테니까.

 

그런데 얼마 후에 그 허접한 분석 비용으로 엄청난 금액을 지불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까무러칠 뻔했다. 정말 화가 났다. 그리고 돈이 아까웠다. 얼마나 아까웠는지 지금도 정확한 금액이 기억난다. 그리고 컨설팅이라는 게 그렇게 허황한 걸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고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신문 지상을 통해 그 잘난 분이 유명한 컨설팅 회사에 심취해서, 그들의 말을 전폭적으로 신뢰하여 그릇된 결정을 내려서 회사에 엄청난 기회 손실을 주게 했다는 기사를 보고는 잊었던 옛일이 생각났다.

 

제발 Implementation Plan, Phase 1, Phase 2……어쩌고저쩌고 하는 구체적으로 업무를 개선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그럴싸한 문구에 현혹되어 넘어가지 맙시다. 그리고 피 같은 돈 들여서 외부 회사의 자문을 구하기 전에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시다. 에구 몇십 년이 흘렀는데도, 자다가 생각해도 그 돈이 정말 아깝네.

 

(2021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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