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

옛날에 금성사 특허과에서

삼척감자 2022. 9. 6. 03:00

거의 50년 전 내 신입사원 시절에 업무부에서 특허 업무를 담당할 때 얘기니까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일이다. 그때는 곰이 마늘을 먹고 100일 동안 동굴에서 웅크리고 있으면 예쁜 여자가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했다던데 나는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아래 이야기는 내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이니 신화가 아니고 금성사 역사의 일부가 되겠다.

 

그 당시에는 산업 재산권법(특허법, 실용신안법, 상표법, 디자인 보호법)과 관련 법령이 일본 것과 같았다. 금성사의 직무 발명 보상 규정도 히타치 걸 거의 그대로 번역해서 만들었다. 언젠가 특허국(몇 년 후 특허청으로 승격됨)에서 실시하는 교육에서 어느 강사가 “우리 법령이 일본 것과 같은데 어느 나라가 베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기막힌 우연의 일치입니다”라며 쑥스러워했는데, 초창기에는 특허 선진국인 일본에서 그런 식으로 배우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허를 받기 위해 갖추어야 할 요건으로는 (1) 산업상 이용 가능성 (2) 신규성 (3) 진보성 등 세 가지가 있는데 당시에는 특허 출원이 너무 적어서 출원을 장려하는 차원에서 그리 까다롭게 심사하지 않아서였는지 터무니없는 발명(또는 실용신안)이 특허를 받는 일이 잦아서 특허 부서의 직원들이 이의신청하기에 바빴다.

 

일본 코끼리 표 보온밥통을 거의 그대로 베껴서 생산하던 회사에서 실용신안을 출원하였다. 보온밥통의 핵심 기술은 정온 유지 장치였는데 이건 특별히 새로운 기술도 아니어서 비슷한 회로도를 일본 특허 공보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기에 “신규성”이 없는 고안이라고 이의신청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회로도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아서 심사관이 동일성 여부를 좁게 판단한 경우 이의 신청이 기각될 우려가 있어서 출원서 회로도 중 “막연히 특수 반도체”라고 설명한 점을 문제 삼아 (구체적 설명이 없어서) 산업상 이용할 수 없다며 이의 신청을 제기하였더니 우리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대구 연락소에서 ‘금성’ 또는 ‘비너스’와 금성사 로고가 부착된 다리미가 5~6개 회사에서 제작 판매되고 있다는 제보와 함께 다리미 실물을 보내 주었다. 해당 회사에 우선, 전화로 상표법 위반이니 사용하지 말라고 알려 주고 계속 사용하면 법적인 조처를 하겠다고 하니 하나같이 하늘에 떠 있는 별인데 왜 금성사만 사용할 수 있느냐고 반발했다. 상표법에 대한 인식이 없을 때라서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거로 생각했던 것 같았다. 경고장을 보내며 상표법에 관하여 설명했더니 모두 사용을 중단했다. 지방의 소규모 제작회사라 생산 물량이 그리 많지 않아서 지방지에 사과 광고를 내는 거로 넘어가기로 했다.

 

룸 에어컨디셔너용 필터는 폴리우레탄을 발포하여 만든 것이다. 에어컨디셔너 커버 안쪽에 들어가니 외부에서 보이지도 않고 아름다워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 이런 것도 디자인이라고 특허국에서 등록해주겠다고 공고했다. 알아보니 몇 년 전에  공고된 모양과 같은 필터가 우리 제품 일부에 사용된 적이 있었다. 묻고 물어서 춘천 연락소에서 그 필터가 삽입된 제품이 설치된 곳을 안다고 했다. 춘천 서비스 센터의 기사와 함께 어느 다방에 가서 새 필터로 무료로 교환하고 구형 필터를 구해서 특허국에 제출하며 디자인 등록 출원일 이전에 같은 물건이 판매되었으니 ‘신규성이 상실’되었음을 사유로 이의 신청을 제기하였더니 우리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그 시절에는 설계실에 기밀 서류로 보관되던 제품 설계도 사본을 특허국에 제출하며 특허출원 전에 국내 또는 국외에서 공지(公知)되었거나 공연(公然)히 실시된 발명이므로 ‘신규성이 상실’되었다는 사유로 이의 신청하여 성공한 적이 많았다. 회사 내에 비밀리에 보관된 자료이므로 공지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대기업체라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게 통했던 시절이었다.

금성사의 첫 번째 특허는 ‘엘리베이터의 승강 장치’였고 두 번째 특허는 이춘래 기좌(당시)가 발명한 ‘축전지의 충방전을 이용한 타이머’였다. 당시에는 금성사 명의의 특허는 딱 두 건이었다.

 

입사 초기에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롤 본드 식으로 제작된 냉장고의 증발기’, FM 스테레오 송수신 시스템’, 칼러 TV와 관련된 수많은 특허명세를 번역하고 분석하느라 진땀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특허과장과 극소수의 직원이 관리하던 소규모 조직이 부사장과 200명이 관리하는 특허센터라는 거대한 조직으로 성장했고, 세계에서 몇 번째로 손꼽힐 정도로 많은 특허를 출원한다고 하니 감회가 새롭다.

 

1978년에 떠나고 40여 년이 흘렀어도 아직도 특허부서는 내 마음의 고향이다. 신입 사원 시절에 몸담았던 부서라서 그런가? 하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다.

 

(2021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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