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는 자동차 운전도 특별한 기술이라고 여겼다. 자동차를 다루는 운전기사들은 전기 전자 제품을 수리하는 서비스맨들을 데리고 다니며 은근히 세도를 부리기도 하고, 꼬장을 부리기도 해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회사에서는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비스맨들이 운전하는 걸 권장하는 뜻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한 서비스 기사들이 운전할 경우 운전 수당을 지급했다. 그랬더니 겸임 운전기사들이 운전 미숙으로 사고를 내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전업 운전기사들이 그걸 노골적으로 즐길 뿐만 아니라 불난 데 부채질까지 해대어서 늘 양 집단 간의 불화가 있었다. 공고 출신인 서비스맨들은 학력이 그보다 낮은 전업 운전기사들을 ‘배우지 못한 놈들’이라고 멸시했고, 운전기사들은 겸업 서비스맨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빼앗는다고 앙앙불락이었다. 그들의 불안감을 덜어주려고 간단한 전기제품 수리 기술을 가르쳐서 전업 운전기사 직무가 없어질 때를 대비시키려 해 보았지만,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려는 사람도 열의가 없어서 두어 달 지나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해마다 정초가 되면 날을 잡아서 무사 운행을 기원하는 고사가 열렸다. 자동차 앞에 둔 작은 탁자에 면도해서 번들번들한 돼지 대가리를 올려놓고 웃고 있는 얼굴을 보며 주둥이에 돈을 끼워주고는 과장, 센터장, 운전기사의 순서로 큰절을 했다. 나야 웃는 돼지 대가리던, 삶은 소대가리든 영험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예수쟁이이지만, 그래도 고사를 지내야 한 해가 편안할 거라 믿는 운전기사들의 소박한 믿음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어찌어찌 고사 얘기를 들은 독실한 예수쟁이인 천안 연락소장에게 야단을 맞기도 했다. 그분은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는 도중에 기도 모임을 곁들일 정도로 신앙심이 깊은 분이었는데, 그분을 싫어하던 직원들은 그 시간이면 속으로, “주여, 우리 소장이 하루 속히 전근되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나이가 나보다 훨씬 많은 그분은 나에게 “김 과장, 정신 나갔소! 목사님 모시고 기도나 하면 될 것이지”라며 언짢아했지만, 가톨릭 신자인 나는 성당에서 신부를 청해서 자동차마다 성수를 뿌린들 신앙이 없는 운전기사들은 예배당 목사나 성당 신부보다도 돼지 대가리가 더 영험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영험이야 있든 없든, 그런 자리를 빌려서 직원들이 단합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로 생각해서 고사를 빙자한 회식 자리는 그다음 해에도 마련되었다.
당시 중부 서비스과에는 19인치 칼러 TV 8대가 장착된 밴, 3톤 트럭, 1톤 트럭, 픽업트럭 등 모두 17대의 서비스 차량이 있었다. 차량 대수가 적지 않다 보니 크고 작은 사고가 잊을만하면 일어났다. 사고 처리 비용이 50만 원이 넘으면 해고, 그보다 적으면 징계한다는 규정 때문에 웬만한 사고는 회사에 보고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처리하곤 했다. 그런 규정이 사고 예방에 다소 도움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운전면허가 있는 서비스맨들이 운전을 기피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교통사고 말고도 가끔 외부 주차장에 주차하지 않고 가짜 영수증으로 주차비를 횡령하거나 수리 비용을 조작하는 등의 비리가 가끔 발각되기도 해서 때로는 야간에 주차장을 방문해서 주차 여부를 확인하거나 정비업소를 방문해서 수리비를 확인하기도 했다. 요즘은 이런 일이 모두 사라졌으리라 믿는다. 호랑이가 담배 피우는 시절은 아니니까.
그런데 지금도 서비스센터에 운전만 하는 전업 운전기사가 있을까?
(2021년 9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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