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별로 신통치 않던 내 노래 실력이 변성기를 거치며 엉망이 되어 버렸다. 고등학교 때는 가창으로 치르던 음악 시험에서는 늘 반에서 유일하고도 최하인 점수, 55점을 받아서 석차를 떨어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회사에 입사하고는 회식에서는 밥 먹기, 술 먹기가 대강 끝나면 으레 노래판이 벌어졌는데 그때마다 참 곤혹스러웠다. 내 순서가 지나가기를 바라며 일없이 화장실을 들락거리기도 했지만 영악한 동료는 나를 빠뜨리는 일이 없이 한사코 내 노래를 들으려고 했다. 맨정신에 노래하기란 어려워서 노래 부를 차례가 돌아오기 전에 연방 술을 들이켜기도 했다.
어렵게 노래를 부르면 듣고서 웃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나만 빼놓고. 그럴 때마다 마음이 상해서 밥 잘 먹고 좋은 분위기에서 잘 놀다가도 기분이 엉망이 돼버렸다. 노래를 못 부르겠다고 아무리 핑계를 대어도 상사와 동료가 강제로 권하는 데야 부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노래가 나옵니다. 쿵다라닥닥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쿵다라닥닥. 어쩌고저쩌고…” 하며 억지로 시키고는 웃고, 놀리고 하는 그런 모임이 정말 싫지만, 한국적인 조직 문화에서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왜 싫다는 데도, 못 부른다는 데도 거의 강제로 노래를 시키는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느 해인가 담당 임원을 모시고 업무부와 수출부의 합동 망년회가 열렸는데 회식이 거의 끝날 무렵 Y상무가 구두 한 짝을 벗어들더니 거기에 술을 가득 부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구두 속을 벅벅 문지르며, “내가 무좀이 있어서 소독해야 하거든. 우선 당신부터 마셔”라며 옆에 앉은 K부장에게 건넸다. 술잔, 아니 구두 잔이 몇 사람을 지나며 바닥났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무좀균이 가득한 술을 마실뻔 했다.
이어서 돌아가며 노래 부르기가 시작되자 음치인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도망갈 수도 없었고 다가올 차례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어 노래했더니 높으신 분이 아무 말 없이 몇 초 동안 나를 노려보는데 기분이 쌔 했다. 박수도 없었고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말 기분이 개떡 같았다.
주재원으로 미국에 오고 나서는 강제로 노래 부를 일이 거의 없어져서 좋았다. 예전에 어떤 사람은 미국에 오니까 좋은 점으로 예비군 훈련을 안 받아도 되는 걸 첫손가락에 꼽던데, 나는 회식 자리에서 강제로 노래하지 않아도 되는 걸 꼽았다.
노래방 기계가 진작에 있었더라면 직장 회식도 즐길 만 했을 텐데. 다들 화면만 쳐다보느라 노래하는 사람에게 관심조차 없을 테니까. 회식 자리에서 드물게 보는 술 못 마시는 사람의 고초도 대단할 것 같았다. 술 마시는 시늉만 하며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을 보면 안쓰러웠다. 술 못 마시는 사람과 음치, 둘 중에 누가 회식 자리에서 더 괴로울까?
(2021년 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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