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눈 덮인 아침에 연어를 생각하다

삼척감자 2024. 1. 20. 13:22

가끔은 바닷가에 있는 생선 가게에서 연어를 사 와서 손질한다. 커다란 연어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비늘을 벗기고, 뼈와 살을 분리하고, 껍질을 벗겨내고, 도막 쳐서 소금을 뿌린 다음, 냉장고에 30분 정도 두었다가 꺼내어 씻어 내고 물기를 닦은 다음 냉동실에 보관해 두었다가 생각날 때마다 꺼내 먹는 게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요즈음은 그것도 귀찮아서 코스트코에서 껍질과 뼈를 발라낸 노르웨이산 연어를 사 와서 손질해 먹으니 훨씬 더 편하다. 생선 가게에서는 물어볼 때마다 갓 잡아 온 자연산 연어라고 하기는 하는데, 신선도가 떨어져 냉동했던 걸 해동해서 파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가기도 하는 연어와는 달리 양식 연어, 냉동한 적 없음, 오늘 아침에 손질 후 포장됨이란 표시가 더 믿을만해서 요즈음은 코스트코에서 연어를 사는 편이다. 값도 더 싸고, 양식했다니 기생충 걱정도 없고, 손질해 보면 신선한 게 느껴져서 얼마 전부터는 생선가게에서 연어를 사지 않게 되었다.

 

내 고향 삼척 시내를 관통해서 흐르는 오십천(五十)은 연어가 산란하러 올라오는 강이다. 어릴 적 연어 산란기에 강가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면, 은빛을 번쩍이며 강 상류로 올라오는 연어 떼가 장관이었다. 그야말로 물 반 고기 반이라는 표현 그대로였다. 그렇게 연어가 흔하다 보니 소금에 절여서 젓갈로 만든 연어알을 흔하게 먹었다. 그런데 내 기억으로는 어릴 적에 연어를 먹은 기억이 전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연어를 회나 구이나 탕으로 먹어 보지 않았다. 바닷가에 살아서 다른 생선은 자주, 그리고 많이 먹었는데, 왜 연어는 알만 먹었을까? 그게 오랫동안 궁금했는데 연어의 일생을 알아보니 그 까닭을 알게 되었다.  

 

연어는 바다에서 성장하다가 산란을 위해 강으로 거슬러 올라온다. 연어는 산란 후에는 죽게 되지만, 알은 부화하여 다시 바다로 돌아가게. 산란을 위해 민물로 들어오면서 아픔을 느끼는 감각이 차단되고 면역 억제를 시작하기 때문에, 반송장 상태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늘이 떨어지고 살이 썩는데도 여전히 움직이는데, 연어들의 이런 으스스한 상류행 행진을 북미에서는 좀비 연어 떼라고 부르기도 한다. 산란기에 강 상류에서 잡힌 이런 상태의 연어가 맛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잡힌 연어에서 알만 꺼내어 젓갈로 만들고 나머지 부분은 먹지 않고 버렸을 거로 생각된다.

 

연어의 산란은 생명의 순환을 상징하는 중요한 자연 현상이다. 산란을 통해 새끼 연어가 태어나고, 새끼 연어는 다시 바다로 나가 성장하여, 다음번 산란을 위해 강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연어 삶의 주기는 생명의 순환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다. 상류로 거슬러 올라간 연어는 산란을 마치면 거의 즉시 생을 마감한다. 강 상류에서 산란을 마친 연어가 다시 하류로 헤엄쳐 내려가 바다에서 1년 더 생존해 또 산란기를 맞아 성공적으로 상류로 돌아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렇기에 자연 선택의 법칙에 따라 이들은 단 한 번의 산란에 모든 걸 쏟아붓는다. 그리고 어쨌든 이미 자기 유전자를 한 번은 성공적으로 남긴 셈이니 말이다. (이 문단은 나무 위키에서 인용)

 

만약 인간이 연어가 보여 주는 삶의 법칙을 따라 단 한 번의 번식 행위를 마치고 거의 즉시 생을 마감한다면 얼마나 허무할까? 다행히 내가 연어가 아니라서 젊음이 사라지고도 오래 살며 자식들이 나이 들어가고, 외손녀와 외손자들이 자라는 걸 지켜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싱거운 생각을 하며 마쓰오 바쇼가 지었다는 눈 덮인 아침이란 하이쿠를 떠올려 본다. 그리고 내가 연어가 아니라서 번식에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또 해 본다.

 

눈 덮인 아침,/ 홀로,/ 말린 연어를 씹으며.

 

이 하이쿠도 참 내용이 싱겁다. 말린 연어는 없지만, 냉장고를 뒤져보니 몇 주 전에 손질해서 냉동실에 보관해 둔 연어 한 덩이가 있다. 그거라도 해동해서 저녁에 술안주 삼아 한 잔해야 하겠다. 눈 덮인 저녁에 한 잔 아니 할 수 없지.

 

(2024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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