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를 당해서 다리 하나를 잃고 하나는 크게 다친 지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시간이 흐르니 휠체어에 앉아서 지내는 생활에도 적응되어 가고 끔찍했던 기억도 희미해지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지금도 두 다리로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꿈을 꾸고는 깨어나서 허무해하곤 한다. 걷는 연습을 하다가 가끔 다리 하나가 없다는 사실을 깜박 잊고는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 다리 하나로 사는 데 적응이 될 것이다.
요즈음은 재활원에 다니면서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의족을 끼고, 보행 보조기(워커)를 짚고 연습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지만 걸어서 성당 2층에 쉽게 올라갈 수 있는 날이 머잖아 오리라 확신한다. 주님께서 "일어나 걸어라. 내가 네 손 잡아 주리라."하고 말씀하시는데 뭘 걱정하겠는가?
일 년 전에 일어난 그 교통사고는 정말 날벼락이었다. 길거리의 앞뒤로 주차한 차들 사이의 공간에 내 차를 주차해 놓고 나서, 트렁크에서 뭔가를 꺼내려고 하는 데 몸이 붕 떠서 한참 동 안 날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참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1~2초 동안의 짧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깜빡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떠 보니 다리가 불붙는 것처럼 뜨거웠고, 몸을 움직여 보니 다리가 두 개 다 덜렁거렸다. 내 주위에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여들어 구경하고 있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옆에 서서 들여다보고 있던 사람의 도움을 받아 911과 집에 전화하고 얼마 후에, 구급차에 실렸다. 그리고는, " 이제 다리 없이 어떻게 살아갈까?" 하고 생각하며 서럽게 울다가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의식은 가물가물한데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가 상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하얀 시트로 덮여 있는 다리 하나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Thanks God!"이라고 내뱉었다.
어디에 와 있는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몸은 어떤 상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의식은 계속 가물가물하고....옆에 있던 아내가 사고 후 두 달이 지났다고 했다. 뭐라고 말하려고 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나서 알고 보니 왼쪽 다리는 절단되어 있고, 오른쪽 다리는 여러 도막으로 부러진 걸 어렵게 쇠막대기로 연결해 놓은 상태이고, 성대가 망가져서 말할 수가 없고, 삼키는 근육이 상해서 음식을 입으로 삼키거나 마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종이 한 장 들어 올릴 기운조차 없고, 가래가 끓고 기침이 끊임없이 나서 숨쉬기도 어려웠다. 19 살 된 운전 경험이 별로 없는 아이가 부주의로 내 차 뒤에 주차한 차를 들이받으면서 내가 차 두 대 사이에 끼였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고. 다리 하나라도 건졌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은 뜻밖으로 평온했다.
"기왕에 벌어진 일 모두 주님께 맡기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굳게 다짐하면서 두 가지를 결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님을 원망하지 말자."와 "많이 웃으며 살자."였다. 많이 웃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병객들을 만날 때마다 미소를 지었더니 일요일마다 방문하시던 어느 미국 신부님은, "넌 정말 백만 불짜리 미소를 가졌구나!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웃을 수 있니?"하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밤에는 그럴 수 없었다. 누워서 십자고상을 노려 보고 있노라면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온몸이 붕 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막 뒤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여기저기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꼭 죽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말을 할 수 없는 답답함과 먹고 마실 수 없었기에 배고픔과 갈증도 견디기 어려웠다. 억울하다는 감정도 억누르기 어려웠다. 나는 그 사고를 낸 게 아닌데, 잘못이 있다면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있었다는 것뿐인데, 나는 이 고통을 받아야 하고 나를 친 녀석은 멀쩡하다고 생각하니 억울한 생각은 더했다. 죽으면 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매일 밤 십자고상을 노려보며 눈물을 흘리며 투정을 부렸다. "주님, 절 빨리 데려가 주세요." 라거나 "주님, 전 정말 억울합니다."라고.
그러던 어느 날 오후였다. 아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내 앞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광경이 보였다. 모두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고 있는데, 표정은 하나같이 침통해 보였다. 멀리 뚜껑 닫힌 상자 같은 것이 보였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관인 것 같았다. 이 사람들이 뭘 하고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며 둘러보고는 그들이 내 연도를 바치기 위해 모여 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누가 와 있는지 둘러보니 낯선 이들만 보여서 가슴이 썰렁해졌다. 그러고 있는데 아내가 돌아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환시를 본 것이었다. 그 이후로 죽고 싶다는 생각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주님께서는 환시를 통해서 나를 깨우쳐 주신 것일 거다.
사고 후 6개월 만에, 그러니까 퇴원하기 얼마 전에 성대 수술을 통해 목소리를 되찾았다. 망가진 성대를 인공 보형물로 일으켜 세워 놓았는데, 목소리가 쉰듯하고 전화로 내 목소리를 처음 듣는 사람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도 이런 사소한 문제를 말 못 하는 고통에 비할까? 몇 달 동안의 삼키는 훈련을 거쳐 음식도 다시 입으로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여러 조각으로 부러진 오른쪽 다리뼈들을 결합하기 위해 아홉 달 동안이나 부착해 놓았던 쇠막대기도 제거하고, 82파운드까지 떨어졌던 체중도 정상으로 되돌아오고 끔찍했던 입원 생활을 되돌아보면서 이제는 주님이 겪은 고통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의족을 맞추어서 신고 걷는 연습만 하면 되는구나 하고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의족 전문가를 여러 사람 만나 보고, 의족을 맞추고 재활훈련에 대해서 알아보고....바쁜 나날이었다.
드디어 의족을 받아오던 날, 의족 전문가가 다칠 수 있으니 절대로 집에서 연습하지 말고 재활원에서만 연습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내 인생은 이제부터 장밋빛이구나!" 하고 들떠 있던 사람에게 그 말이 귀에 잘 들어오겠는가? 급한 마음에 그날 저녁에 당장 의족을 끼고 복도에서 걷는 연습을 하다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다리에서는 피가 흘렀다. 다리를 움직여 보니 부러진 것 같았다. 구급차를 불러 타고 병원으로 가면서 "설마 이번에 또 다리를 자르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은 억누를 길 없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느껴지는 통증을 참아 가며 병원 응급실에서 오랫동안 누워 있으면서, 주님이 겪은 고통을 알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오만이었음을 깨달았다.
엑스레이를 찍은 다음에, 의사가 다행히도 다리뼈 세 군데에 금이 갔을 뿐, 부러지지는 않아서 허벅지에서 발가락까지 두 달 정도 깁스를 하고 지내면 뼈는 아물 것이라 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두 달이 지나 깁스를 제거하고 바로 재활원에 등록하고, 요즈음은 매주 세 번씩 재활원에 가서 재활 훈련을 받고 있다. 걷는 연습을 위주로 해서 약해진 다리 근육 강화와 팔 운동 그리고 체력 단련을 위한 훈련을 받는다. 재활원에서 짜 준 프로그램에 따라 심리상담을 매주 한 번씩 받기로 되어 있다.
얼마 전에 심리상담을 받기 위해 담당자인 카플란(Kaplan) 박사를 만났더니 미주알고주알 많이도 물어본다. "사고 전과 비교하면 딸들과의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많이 가까워졌어요, 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전화하던 놈들이 이제는 하루에도 두세 차례씩 전화해요." "하느님과의 관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아주 가까워졌어요. 아니, 늘 저와 함께하시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성당에 가면 어떤 느낌이 들어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느껴져서 행복해요." "요즘 기분은 어떠세요?" "행복합니다." "왜 행복하다고 느끼지요?" "살아 있다는 게 행복하고, 말을 할 수 있으니까 행복하고 또 입으로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까 너무 행복해요." 상담을 마치며 그녀는 "당신은 어려움을 잘 극복해 나가는 것 같으니까 정기적인 상담이 필요 없을 것 같다."라고 했다.
상담을 마치며 그녀는 내게 뜬금없이 무슨 내용이든, 한국어로도 써도 좋으니 글을 열심히 써보라고 권했다. 사고로 인한 정신적 후유증 치료에 글쓰기가 크게 도움이 될테니 자신의 충고를 잊지 말고 따르라고 거듭 권했다. 몸이 회복되며 기운을 차릴 무렵 그녀의 권유가 생각나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둘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연애 편지 한 장 제대로 써 본 적이 없는 내가 글쓰기로 소일하게 되었다.
다리 하나를 잃고 나서야 일상적인 것들, 어떻게 보면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 난 정말 우둔한가 보다. 사고 이후에 나는 우리 공동체 가족(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교우 여러분)들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많이 받았고 그 사랑이 나를 다시 일으켜 준 힘이 되었다. 공동체 가족들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을 말로 이루 다 표현할 길이 없다.
(2006년 7월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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