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는 뭐가 올까?
코비드 19 때문에 시작된 격리 생활에 들어가기가 힘들었지만, 거기서 빠져나오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과거가 그립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지난 일상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규범은 어떻게 보일 것이며, 어떻게 느껴질까? 일상은 어떻게 바뀔까?
누구나 어느 정도의 사회적 거리 두기-나는 점점 이 용어에 거리를 두고 싶어진다--는 당분간 계속될 거라는 데에 동의한다. 우리는 손을 씻고, 드러난 피부를 씻어내고, 마스크를 걸치고, 사람들이 모인 곳을 피할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바이러스를 두려워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우리가 서로를 두려워할 거란 것을 뜻할까? 얼마 전 상쾌한 봄날 오후에 나는 우리 개, 그레이시와 함께 외진 곳에 있는 등산로의 가파른 곳을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어떤 남자가 개와 함께 우리 쪽으로 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놀라움은 이내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 남자가 지나가기에 넉넉한 공간을 주려고 허둥대다 미끄러지기까지 하며 그레이시를 길옆으로 적어도 10피트(3m) 정도 잡아끌었다. 그가 우리 옆으로 다가오자 그는 멈춰 서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등산용 지팡이와 등산화에 묻은 진흙을 털어 냈다.
“날씨 한 번 끝내 주네요.”라고 그가 말했다. 그의 개는 좀 떨어져서 코를 킁킁거리며 뭔가를 알아내려고 했다.
나는 억지로 미소지으려 애쓰며, “지금은 그런 셈이지요.”라고 대답했다.
“내 주치의가 이런 데서는 공기를 통한 감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어요. 오히려 옻에 걸리기가 쉽지요.” 그렇게 말하고 그 남자는 떠났고, 그의 개는 우리가 등산로로 허겁지겁 되돌아가는 내내 그레이시를 뒤돌아보며 관심을 표했다.
그레이시와 나는 등산길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멈춰서 수다 떠는 걸 즐긴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낯선 사람을 만나자 두려웠다. 내 온몸은 긴장했다. 우리가 자신을 보호하려는 코비드 19 규범을 지키는 게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거로 작용한다면 어떻게 우리는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거리 두기가 폐지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더는 사람들을 이전처럼 대하지 않게 될까 봐 걱정된다. 우리는 다시 껴안을 수 있게 될까? 기도하며 손을 맞잡을 수 있게 될까?
믿음이란 알 수 없는 사람을 신뢰하는 것이며 내가 알 수 없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으로서, 사랑이 많으신 하느님은 가는 길이 분명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하신다고 나는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말한다.
주님, 우리 이웃을 다시 예전처럼 사랑하는 게 안전해 질 때까지, 그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EDWARD GRINNAN
(2021년 3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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