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 17

서비스 과장 시절에

금성사에 입사한 지 4년 막 지나서, 서른 번째 생일을 몇 달 앞두고 승진이라는 걸 했다. 지금 기준으로는 조금 빠를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회사 조직이 급격히 확장할 때라서 채워야 할 자리에 비해 사람이 부족하여 전공이나 경력이 그 자리에 적절한지 별로 따지지 않았다. 그래서 특허 업무를 담당하던 책상물림이 지역 사령관 격인 서비스 과장에 임명되었다. 비교적 평화로운 서울 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지방으로 이삿짐을 싸서 내려가려니 좀 서글펐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촌구석(?) 대전에서 근무하려니 갑자기 변방으로 밀려난 듯해서 억울했다. 막연히 업무부와는 달리 분위가 거칠 거로 생각했지만, 관련 부서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두려움이 앞섰다.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 경기도 일부 그리고 ..

시간여행 2022.09.04

냉장고에 화재 발생

‘위니아 딤채’ 김치 냉장고에 화재가 발생한 사례가 지난 몇 년간 수백 건에 달한다는 신문 기사를 보니 40년 전 서비스 과장 시절에 겪은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금성 소형 냉장고에 가끔 불이 났다. 모두 냉장고 부품에 불이 붙었다가 꺼지는 정도였을 뿐, 다른 데로 번져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고객에게서 그런 신고가 접수되면 바로 직속 상관에게 보고한 다음 경험 많고 설득력이 뛰어난 서비스 기사를 현장에 파견했다. 그러면 서비스 기사는 “제품을 대량 생산하다 보면 어쩌다 한두 개 정도는 이런 불량품이 나올 수 있다. 바로 새 제품으로 교환해 드리겠다.”고 약속하고는 대리점에서 새 제품을 빌려서 바로 당일로 고객에게 인도하면, 대개 고맙다는 인사까지 받으며 원만하게 처리되곤 했..

시간여행 2022.09.03

구자경 회장님을 처음 만난 날

나는 대학생일 때 구자경 회장을 처음 만났다. 내 나이 스무 살일 적에 제1회 연암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당시 막 회장에 취임한 40대 중반의 회장님을 다른 장학생들과 함께 만났다. 일개 대학생이 그분을 만난 연유는 이렇다 소년 가장으로 힘겹게 대학 생활을 하던 나를 눈여겨본 학과장님이 어느 날 사무실로 불러서 투박하게 타자된 용지 몇 장을 주시며 “너 금성사 장학생 한 번 신청해 봐라”라고 했는데, 누가 경상도 사람 아니랄까 봐 별다른 설명도 없이 생색내기도 없이 무뚝뚝한 그 한마디뿐이었다. 내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머뭇거리자 “빨리 가봐” 딱 그 말뿐이었다. 등록금과 생계비 마련을 위해 1년 내내 아르바이트에 밤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공부하러 학교에 다니는지, 돈 벌기 위해 학교에 다니는지 나도 ..

시간여행 2022.09.03

고장 난 냉장고가 왜 그리 많았던지

냉장고는 냉매가 기화될 때 열에너지를 흡수하는 성질을 이용한 장치이다. 냉장고는 크게 증발기, 저장고(음식을 저장하는 곳), 압축기(냉매를 펌프로 압축하여 응축기로 보내는 장치), 응축기로 구성되어 있다. 냉장고는 부피가 큰 부품 몇 개를 동파이프로 연결하여 냉매가 순환하게 하는 간단한 기계 장치다. 응축기나 증발기는 고장 날 일이 없는 부품이고, 압축기도 고장 나는 걸 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도 80년도를 전후한 어느 해에는 고장 난 냉장고 수리 의뢰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들어와서 수리실을 가득 채우고도 공간이 부족해서 임시로 창고를 얻어야 할 정도였다. 고장은 대부분 구리 파이프 어딘가에 뚫린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구멍을 통해 서서히 냉매가 새기 때문에 냉각 기능을 잃는 것이었다. ..

시간여행 2022.09.03

감전사한 분의 가족을 만나본 체험

내가 중부 지역 서비스 과장을 할 당시의 지방 서비스 조직은 업무 및 직원 인사 관리는 서비스 과장이 맡되 직원의 근태 관리는 연락소장에게 위임하는 방식이었다. 중부 서비스과에 소속된 직원은 충청과 호남 지역 내 6개 연락소와 함께 있는 6개 서비스 센터에서 근무하는 70여 명이었는데 과장이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직원들을 자주 만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그런 관리 방식을 택한 것이다. 40년 전 어느 날, 본사의 서비스 부장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청주 지역에서 감전사한 분의 가족을 만나 경위를 조사하되 절대 회사에서 부당하게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유의하라는 긴급 지시였다. 바로 청주 연락소장에게 전화하여 간단한 사고 경위를 들었다. 어느 아주머니가 감전사했는데 유가족은 그분이 금성 텔레비젼 때문..

시간여행 2022.09.02

가지 못한 길

가끔 유튜브로 전기공학 강의를 들을 때가 있다. 내 자식 나이쯤 되는 잘생긴 강사는 어려운 강의도 쉽게 풀어서 머리에 쏙쏙 집어넣어 주어서 어쩌다 들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최근에는 전기공학의 기본 공식이라는 주제로 ‘키르히호프의 법칙, 앙페르의 법칙, 쿨롱의 법칙, 플레밍의 법칙, 비오사바르의 법칙’ 등을 설명하는 걸 들으며 50여 년 전 대학교에서 들은 전기자기학과 회로 이론이 생각났다. 이 두 가지를 공부하지 않고는 다음 전공과목으로 나아갈 수 없는 아주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과목이다. 대학 졸업 후 우연히 우리 조상들의 독서 방식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분들이 읽은 책이라고 해야 권수로 헤아린다면 몇 권 되지 않았다. 그들은 그 몇 권 되지 않는 책을 읽고 또 읽고, 아예 통째로 다 ..

시간여행 2022.09.02

70년대의 사무실 풍경

70년대의 사무실 책상 위에는 뭐가 있었을까? 개인용 컴퓨터도 없고,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니 책상 위에는 탁상용 전화기, 필기도구 그리고 업무 참고용 책 두어 권 정도만 놓여 있었다. 그리고 과장의 지시에 따라 매일 작성하던 업무일지, 기안 용지와 통신문 같은 양식 몇 가지와 사본 작성용 먹지도 늘 놓여 있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대부분의 업무가 전화와 종이로 이루어지던 시절이니 이런 정도만 있으면 충분했다. 그러면 계산은 무엇으로 했을까? 내가 신입사원 시절에 근무하던 업무부에는 직원이 20여 명 있었는데 그들 모두가 공용으로 사용하던 보물이 하나 있었다. 사무실 뒤쪽 복판에 원탁이 하나 있었고 그 위에 쇠줄로 원탁 다리에 묶어 놓은(누가 훔쳐 갈까 봐) 최신형 전자계산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시간여행 2022.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