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생활

동포들의 신앙생활

삼척감자 2024. 3. 22. 09:28

   내가 다니는 체육관에서 가끔 보는 한국 남성 동포들이 나까지 포함해서 네 명인데, 한 분만 빼고는 눈인사만 할 정도이지 커피 한 잔 함께하거나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은 없어서 늘 데면데면하게 지낸다. 그래도 미국 동포사회에서는 신앙생활을 통해서 동포를 만나는 게 중요하기에 그들이 어떤 종교를 가졌는지는 알고 있다. 다들 일흔이 넘은 나이지만, 그래도 나이 차이가 있으니 나이 순으로 동포 1에서 동포 4까지로 구분해 본다.

 

   동포 2인 나는 가톨릭 신자로서 체육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인 성당에 다닌다. 몇 년 전 이사 와서 제일 먼저 만난 동포 4에게 혹시 성당이나 예배당에 나가는지 물어보았더니 그는 정색하며 저는 믿는 종교가 없고 앞으로도 신앙을 가질 생각은 전혀 없으니 제게 전도할 생각을 마세요.”라고 말하는데 표정이 좀 험악했다. 그냥 인사치레로 물어본 말에 그렇게 정색하고 대답하니 좀 면구스러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인은 예배당에 열심히 나가지만, 묵인한다고 한다. 아마도 개신교 신자들에게서 마음의 상처를 받은 건 아닐까 하고 짐작하지만, 신앙을 가지거나 말거나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고, 그 나이에 나 같은 사람의 설득에 넘어가지는 않을 테니 나도 그에게 더는 신앙 얘기는 하지 않는다.

 

   다음에 만난 동포 1은 참 점잖고, 나이 몇 살 아래인 나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예의가 발라서 호감을 느꼈다. 몇 번 만나지 않아 동포끼리 점심을 함께했는데, 그 이후로도 가끔 맛집을 찾아다니며 식사를 함께 하곤 한다. 동포4의 얘기를 듣고서야 그분이 체육관 근처의 작은 예배당에서 목회하던 은퇴 목사인 걸 알고 나서부터는 함께 식사할 때마다 내 요청에 따라 그분이 식사 전 기도를 해 주는데 그 기도가 참 은혜로워서 밥맛이 저절로 난다. 목사 티를 전혀 내지 않으니 나도 마음이 편하고, 대화 주제도 종교에서 비껴가니 서로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교리 논쟁을 할 일이 없다. 그저 70대 노인끼리 우정을 나눌 뿐이다.

 

   작년부터 체육관에서 만나게 된 동포 3은 가톨릭 신자로서 지금 내가 다니던 성당에 적을 두었다는데 30년 전에 불교로 개종하여 지금은 뉴욕시에 있는 절에 매주 나간다고 했다. 개종하여 절에 다니는 게 만족스럽다며 나에게 절에 같이 다니자는 걸 딱 잘라서 거절했더니 더는 그런 권유를 하지 않는다. 내가 불교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그의 개종에 대해 뭐라고 얘기할 수도 없고, 나이 든 그의 신앙생활에 간섭할 생각은 없지만, 개종한 까닭이 궁금하기는 하다. 하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하필이면 가톨릭, 그것도 내가 다니던 성당의 신자였다는 사람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불교로 개종했다니 솔직히 좀 괘씸하기는 하지만, 불교에 대해 무지한 가톨릭 신자인 내가 그를 비난할 자격은 없다.

 

   내 주위에도 가톨릭에서 불교로, 불교에서 가톨릭이나 개신교로,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개종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다가 어떤 이들은 처음에 믿었던 종교로 되돌아가기도 하는 걸 보았다. 그렇게 종교를 넘나든 이들은 혼란스럽지는 않을까? 그렇게 하건 말건 동포 네 사람은 더는 남의 신앙생활에 관해 묻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그런 문제를 두고 비판한다던가 충고하려 든다면 동포 간에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될지도 모른다.   

 

   불교 3대 법칙(三法印) 중 하나인 제행무상(諸行無常)모든 것은 한결 같을 수 없으며 모두 변한다는 뜻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덧없음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코헬 1, 9)

 

   불교와 기독교의 경전에 나오는 말씀이 같은 의미를 지닌 게 적지 않음을 알게 될 때마다 나는 참 진리는 서로 통한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한들 그게 무슨 상관일까? ‘제행무상이고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고 하니 모두 이리저리 길을 헤매는 듯해도 결국 제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2024 3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