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이후

심폐소생술을 지켜보고

삼척감자 2022. 9. 5. 02:02

내가 이용하는 헬스클럽은 큰 종합 병원에서 직접 운영하는 곳인데 며칠 전에 거기서 우연히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걸 보게 되었다. 심폐소생술이란 심장의 기능이 정지하거나 호흡이 멈추었을 때 시행하는 응급조치이다. 심장마비의 경우 신속히 조치하지 않으면 사망하거나 심각한 뇌 손상을 입을 수 있으므로 환자를 발견한 목격자가 신속히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운동이 끝나고 혈압이나 측정해 보려고 의자에 앉아서 혈압계의 커프를 팔에 끼우려고 하는데 몇 걸음 떨어진 운동기구에 앉아 있던 사람의 몸이 옆으로 쓰러지는 게 보였다. 그 부근에 있던 키가 무척 큰 여자 트레이너가 얼른 다가가서 “Are you OK?”라고´물어보았지만, 대답이 없었고, 이내 “응급상황 발생”이라는 구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조치는 일사불란하게 전개되었다.

 

그 트레이너는 환자를 얼른 바닥에 눕히고 침착하게 손바닥으로 환자의 가슴을 압박하고, 또 다른 트레이너는 서둘러 사무실 앞 벽에 늘 걸려있는 전기 충격기를 가져왔고, 잠시 후 들것을 갖고 오는 직원과 휠체어를 굴리며 들어오는 직원들이 보였고, 뒤이어 간호사 두어 명이 이동식 병상을 굴리며 들어왔고, 휴대용 산소호흡기도 보였고, 그러고도 몇 명의 직원이 더 들어와서 환자 주위를 열 명도 더 되어 보이는 직원이 둘러쌌다. 그들이 모여서 응급조치를 취한 다음 병상을 밀며 병실로 환자를 이송하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전기충격기를 가져오는 직원과 병상을 옮기는 직원들만 뜀박질했을 뿐 다른 직원들은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맡은 일을 수행했다. 그러면서도 평소에 훈련을 많이 받았는지 모든 일이 빈틈없이 신속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침대로 옮겨져서 병실로 이송되는 환자를 보니 셔츠는 가슴 위로 올려져 있었는데, 가슴에는 까만 전극이 부착된 채였고, 드러난 하얀 배는 만삭인 임산부보다 더 커서 그야말로 남산만 했다. 그렇게 뚱뚱한 몸매를 보니 오래 전부터 심장에 이상이 있었을 듯싶었다. 그때까지도 의식은 되돌아오지 않은 것 같았다. 복도의 휴게실에서 아내가 운동을 마치고 나오기를 기다리며 생각하니 그 환자에게는 생사가 걸린 일인데 오래전에 그런 체험을 한 내가 스포츠 경기 관람하듯이 환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잊고 구경한 게 마음에 걸렸다.

 

내가 심폐소생술이란 걸 받은 건 10여 년 전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느 날이었다고 한다. 이른 아침에 아내가 내 병실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간호사가 가로막더란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보니 대답을 하지 않기에 열린 문 사이로 들여다보니 의사와 간호사 10여 명이 병상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응급 상황임을 바로 알 수 있겠더라고 했다.

 

그때 일이 나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건장한 남자 두어 명이 나를 내려다 보며 작은 기계를 작동하려고 하는데 뭔가 문제가 있는지 당황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위산이 역류했는지 목과 입 안쪽은 타는 것처럼 뜨거워서 견딜 수 없었다. 그러고 한 달 후 의식을 찾고 보니 폐에 인공호흡기를 연결하느라 기관지를 절개한 흔적으로 쇄골 바로 위에 큰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때문에 성대가 망가져서 그 이후로 너덧 달 동안 말을 못 하고 물 한 모금 넘길 수 없었지만, 심폐소생술 덕분에 이승과 저승 경계선에서 다시 이승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

 

그 당시에 심장이 정지했는지 호흡이 멈추었는지, 아니면 둘 다 기능을 중단했는지는 모르지만, 몇 분만 늦게 발견되어 응급조치가 지체되었더라면 뇌세포가 망가졌을 텐데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이렇게 글도 쓸 수 있으니 그 또한 다행이다. 비록 먹고 마시고 말할 수 없어서 몇 달 동안 고생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살아 있어서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도 지켜볼 수 있으니 행복하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2020 3 2)